〈2020 올해의 사진〉 나의 어둠을 돌려달라

사진 이규철·글 장혜령 2020. 12. 3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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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읽은 적이 있다.

고문실이 어두울 거라 여겼던 내 짐작과 달리, 구금된 이들은 '빛'이 고통이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던 건 빛과 어둠의 문제였다.

빛, 소리, 색채.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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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철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난 송석진씨(1926년생)는 1948년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됐다. 1948년 12월 군사재판을 받았고 목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11월16일 제주 4·3 수형인 8명에 대한 재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무죄를 구형했다. 송씨는 재심 개시를 앞둔 2월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언젠가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읽은 적이 있다. 고문실이 어두울 거라 여겼던 내 짐작과 달리, 구금된 이들은 ‘빛’이 고통이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던 건 빛과 어둠의 문제였다. 그들은 24시간 어디에도 숨을 곳 없는 빛 속에 낱낱이 피폭된 것이다. 빛, 소리, 색채….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다만 없는 것은 어둠이었다.

여기, 나이 든 두 남자가 카메라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프레임 바깥의 우리도 뒤늦게 그들을 응시한다. 우리 사이에 칼 같은 어둠이 놓여 있다. 재심 청구를 통해 이들이 끝내 되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어둠일지 모른다.

ⓒ이규철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출신 김두황씨(92)는 1948년 11월 성산포경찰서로 끌려갔다. 남로당에 가입했냐는 질문에 “그런 적 없다”라고 하자 폭행과 고문이 시작됐다. 지금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12월7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49년 4월 미군정청 법령 등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지 71년 만의 일이다.

사진 이규철·글 장혜령(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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