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립운동가에 구한말 의병 기우만·박원영·김익중 선생

박병수 2020. 12. 31. 10:5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구한말 의병인 기우만, 박원영, 김익중 선생이 내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박원영 선생(미상~1896)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기우만 선생이 의병을 일으키자 바로 달려가 참여했고 의병의 실무를 주관했다.

김익중 선생(1851~1907)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기우만 선생이 의병을 모으자 평소 교류가 있던 포수들의 참여를 독려했고, 1907년엔 기삼연 선생을 중심으로 한 호남창의회맹소에 참여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훈처·광복회·독립기념관 공동선정
기우만 선생. 보훈처 제공

구한말 의병인 기우만, 박원영, 김익중 선생이 내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선정 작업은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 공동으로 이뤄져 31일 발표됐다.

이들 선생은 모두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해 1896년 의거한 호남지역 의병들이다. 유학자 노사 기정진의 학맥을 계승해 일제 등 외세의 국내 정치 개입을 배격하며 장성,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장성 탁곡 출신인 기우만 선생(1846~1916)은 1892년 2월 장성향교에서 호남 의병을 일으켰다. 장성, 나주에서 기반을 다진 선생은 광주에서 대규모로 의진을 결집해 회맹하고 서울로 북상할 계획이었으나, 국왕의 해산 조칙으로 같은 해 봄 해산했다. 이후 1909년 ‘호남의사열전’을 집필해 의병의 활약상을 정리했다.

박원영 선생(미상~1896)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기우만 선생이 의병을 일으키자 바로 달려가 참여했고 의병의 실무를 주관했다. 의병 해산 뒤 진위대에 체포돼 처형됐다.

김익중 선생(1851~1907)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기우만 선생이 의병을 모으자 평소 교류가 있던 포수들의 참여를 독려했고, 1907년엔 기삼연 선생을 중심으로 한 호남창의회맹소에 참여했다. 회맹소 의병들은 고창읍성을 공격해 점령했고, 선생은 일제의 고창읍성 탈환에 맞서다 전사했다.

기우만 선생은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박원영 선생과 김익중 선생은 1995년과 1990년 차례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보훈처는 또 6·25 전쟁영웅에 김갑태 육군 중령(1924.10.1.~1952.10.4)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육사 8기로 임관한 김 중령은 1952년 10월 2일 3사단 22연대 1대대 1중대장(당시 대위, 대대장 대리 겸임)으로 강원도 748고지(피의 고지) 탈환을 위해 기습공격을 지휘하다 적의 포탄 파편을 맞고 쓰러져 후송됐으나 3일 만에 전사했다. 김 중령은 을지무공훈장과 2계급 특진이 추서됐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