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 의병' 기우만·박원영·김익중 선생, 1월 독립운동가

이원준 기자 2020. 12. 3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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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기우만, 박원영, 김익중 선생은 모두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해 1896년에 일어난 호남지역 의병들이다.

기우만 선생은 1896년 2월 장성향교에서 최초로 호남의병을 일으켰다.

박원영 선생은 기우만 선생이 의병을 일으키자 곧바로 참여했고, 나주에서 광주로 이동한 장성의병의 실무를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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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중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기우만, 박원영, 김익중 선생은 모두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해 1896년에 일어난 호남지역 의병들이다. 서양 및 일제의 국내정치 개입을 거부하고 왕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장성과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기우만 선생은 1896년 2월 장성향교에서 최초로 호남의병을 일으켰다. 장성과 나주에서 기반을 다진 선생은 광주에서 대규모로 의진을 결집해 서울로 북상할 계획을 세웠으나 국왕의 해산 조칙으로 1896년 봄에 해산했다.

선생이 일으킨 의병은 단발령의 철폐와 일제 축출, 개화 정책의 반대, 옛 제도의 복구 등을 내세웠다. 의병해산 후에는 의병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1909년 '호남의사열전'을 집필해 활약상을 상세히 정리했다.

박원영 선생은 기우만 선생이 의병을 일으키자 곧바로 참여했고, 나주에서 광주로 이동한 장성의병의 실무를 주관했다. 의병이 해산된 이후 진위대에 체포되어 처형됐다.

김익중 선생은 기우만 선생이 의병을 모으자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포수들의 참여를 독려했고,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나주와 광주를 오가며 활약했다.

선생은 1907년 정미조약으로 전국적인 의병 봉기가 일어나자 호남창의회맹소에 참여, 고창읍성을 탈환하려는 일제의 습격에 맞서다 전사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기우만 선생에게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박원영 선생에게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김익중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wonjun4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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