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항의도 못하니 뒷전 밀린 요양병원, '죽어야 나가는' 反인륜 현장

2020. 12. 31.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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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코호트 격리된 서울 구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함께 격리된 간호사가 외부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연일 1000명 이상을 기록하면서 환자와 의료진 등 직원 전체를 코호트(동일집단) 격리하는 요양병원이 늘고 그 요양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경기 부천의 한 요양병원은 지난 11일 이후 155명의 확진자와 39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사망자가 급증한 것은 환자 대부분이 고령이고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데다 위·중증 환자를 전담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죽어야만 나간다”는 절규가 나올 정도다. 서울 구로구 요양병원도 누적 확진자가 190명이다. 이처럼 최근 집단감염이 발생해 코호트 격리 등이 이뤄지는 요양병원이 17곳에 이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충격이다.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려면 음압 병상과 인공호흡기가 필수이고, 중증 환자를 돌볼 의료진도 필요하다. 그런데 요양병원은 코로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이나 의료진이 없는 곳이다. 그런 요양병원을 당국이 통째로 봉쇄하면서 위·중증 환자 이송까지 지체하는 것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직무유기를 넘어 범죄에 가깝다.

지금 당국은 일반인 확진자를 요양병원 확진자보다 앞 순위에 놓고 있다고 한다. 일반 환자는 외부로 항의해 당국의 잘못이 드러나게 되지만 외부와 차단된 데다 노인뿐인 요양병원은 그럴 일이 없어 후 순위로 둔다는 것이다. 코로나 고위험군인 요양병원 환자들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반인륜인 일이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은 보건 당국이 충분한 병상을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의료 시스템 붕괴 직전”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지났고 요양병원 집단감염에 대비하라는 지적도 수없이 있었다. K방역 자랑하는 정도만큼 실제 방역에 전념했다면 이런 병상 부족은 없었을 것이다. 요양병원 감염 예방은 물론 사후 관리에도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 당국은 이제부터라도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위·중증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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