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리대를 무상 지급하라
[경향신문]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와 남자 화장실인지 재차 확인했다. 화장실 안에 무료 생리대 바구니가 있어서였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코넬대엔 여성 화장실은 물론 남자 화장실에도 무료 생리대가 비치됐다. 성정의옹호연합(GJAC)이라는 아이비리그 학생단체가 이 운동을 주관한다. 이들은 “월경하는 모든 사람이 꼭 여성은 아니므로 가능한 한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모든 화장실에 제품을 비치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생리기본권과 성평등을 동시에 내세우는 것이다.
‘생리 빈곤’이란 생리 기간에 적절한 생리용품을 살 수 없거나, 이용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영국의 2017년 통계에 의하면 영국 소녀의 10~15%가 생리용품을 구매할 수 없거나, 구매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진국에서조차 일부 여성들은 아직도 신문지나 헌 옷으로 생리용품을 대체한다고 한다. 2016년 ‘신발 깔창 생리대’ 보도는 한국의 취약계층 소녀들의 참담한 실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들의 생리용품 구매비용은 평생 약 20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현재 만 11~18세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에게 연간 최대 13만2000원을 생리대 비용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넉넉지 않은 금액이다. 서울·여주 등 일부 지자체들은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를 비치하고 있으나, 소규모에 그친다.
스코틀랜드는 2018년 모든 학교에 생리용품을 비치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2020년 11월 세계 최초로 생리용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6년 노동당 모니카 레넌 의원이 생리 빈곤 퇴치라는 캠페인을 벌인 지 5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기본 방향은 ‘생애 주기에 따른 삶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지만 주로 임신과 출생 전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가임 여성에 대한 배려는 빠졌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생리 빈곤 퇴출이야말로 저출산·고령사회 극복의 시초가 될 것이다. 생리대를 무상 지급하라.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세청장 후보자 처가일가, 매출 8000억원대 가족기업 운영···“이해충돌 소지”
- 성폭행·고문·장기 적출 위험에 노출된 사하라 사막 난민들
- [국대 감독선임 막전막후] 돌고 돌아 홍명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 ‘난 태국인이야’ 블랙핑크 리사의 진화···K팝 스타에서 팝스타로
- 검찰, 김건희·최재영 면담 일정 조율한 대통령실 ‘여사팀’ 행정관 소환조사
- 연판장 사태로 번진 ‘김건희 문자’···“김 여사 전대 개입” 역풍 전망도
- [단독] 지역 농·축협 공동대출 연체율 6배 급증…부동산 한파에 건전성 ‘비상’
- ‘수상한 현금 뭉치’ 울산 아파트 화단서 수천만원 돈다발 잇따라 발견
- 한동훈 “사적 통로 아닌 공적으로 사과 요구했다고 연판장? 그냥 하라”
- 대낮에 길거리에서 둔기로 60대 어머니 폭행한 30대 아들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