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리대를 무상 지급하라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2020. 12. 3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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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와 남자 화장실인지 재차 확인했다. 화장실 안에 무료 생리대 바구니가 있어서였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코넬대엔 여성 화장실은 물론 남자 화장실에도 무료 생리대가 비치됐다. 성정의옹호연합(GJAC)이라는 아이비리그 학생단체가 이 운동을 주관한다. 이들은 “월경하는 모든 사람이 꼭 여성은 아니므로 가능한 한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모든 화장실에 제품을 비치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생리기본권과 성평등을 동시에 내세우는 것이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생리 빈곤’이란 생리 기간에 적절한 생리용품을 살 수 없거나, 이용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영국의 2017년 통계에 의하면 영국 소녀의 10~15%가 생리용품을 구매할 수 없거나, 구매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진국에서조차 일부 여성들은 아직도 신문지나 헌 옷으로 생리용품을 대체한다고 한다. 2016년 ‘신발 깔창 생리대’ 보도는 한국의 취약계층 소녀들의 참담한 실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들의 생리용품 구매비용은 평생 약 20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현재 만 11~18세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에게 연간 최대 13만2000원을 생리대 비용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넉넉지 않은 금액이다. 서울·여주 등 일부 지자체들은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를 비치하고 있으나, 소규모에 그친다.

스코틀랜드는 2018년 모든 학교에 생리용품을 비치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2020년 11월 세계 최초로 생리용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6년 노동당 모니카 레넌 의원이 생리 빈곤 퇴치라는 캠페인을 벌인 지 5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기본 방향은 ‘생애 주기에 따른 삶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지만 주로 임신과 출생 전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가임 여성에 대한 배려는 빠졌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생리 빈곤 퇴출이야말로 저출산·고령사회 극복의 시초가 될 것이다. 생리대를 무상 지급하라.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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