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63] 아프리카의 시간
미국의 월드시리즈나 수퍼볼 같은 큰 게임이 끝난 직후, 경기장 앞의 노점상과 스포츠용품점에선 이미 우승팀이 새겨진 티셔츠가 판매되고 있다. 어떻게 우승팀 예측이 가능한가? 답은 간단하다. 결승전에 진출한 두 팀 모두의 티셔츠가 이미 제작된 것이다. 나머지 절반, 패배한 팀의 티셔츠는 아프리카로 보내진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에는 틀린 우승팀들이 새겨져 있다. 아프리카에서 2020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다저스(Dodgers)’가 아닌 ‘탬파베이 레이스(Tampa Bay Rays)’다. 이들에게는 어느 연도도, 어느 팀의 우승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여행을 다닐 때 어느 나라건 수산시장은 꼭 들러 보는 편이다. 바다 안개와 냄새, 입항하는 어선을 따라오는 갈매기, 운반되는 생선과 상인들의 활기가 좋아서다. 세계 어느 대륙에서도 수산시장은 이른 새벽에 열고 정오가 지나면 대충 폐장한다. 아프리카는 예외다. 수산시장이 오후 느지막이 연다. 새벽부터 서둘러 생선을 팔 이유도 없고, 사러 오지도 않는다. 드물게 부지런한 상인이 아침에 문을 열면 한두 고객이 오전에 생선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건 어제 팔다 남은 생선이다.
아프리카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모든 게 느리다. 그들에게 아주 당연하고 편안한 페이스는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환장할 정도의 느림, 또는 게으름으로 느껴진다. 천혜의 자원을 가진 아프리카가 타 대륙에 비해서 발전이 더디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유가 설명된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에서 언급된 것처럼, 타고난 특성이 사람의 생활 방식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운명 본능’일 수도 있다. 이런 본능 때문에 자본주의 제국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약탈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아프리카 대륙의 영원한 딜레마다. 수산시장에서의 그 반나절 차이가 아프리카가 다른 대륙을 따라가지 못하는 간격이다.
“모레로 미룰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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