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詩편지](40)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이해인 수녀 2020. 12. 3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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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명동성당 기도. 정지윤기자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 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늘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을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 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의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 산문집 <꽃삽> 중에서

어느새 올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불필요한 대화를 자제하고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를 철저히 지키라는 코로나19 안전수칙과 주의사항이 수시로 전달됩니다. 누가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우울한 얼굴들이 많은 요즘입니다. 출장을 다녀온 제게 어느 후배수녀가 하는 말에 “그래그래”라고 했더니 “수녀님은 평소에 늘 그래그래 하는 것 잘 모르시죠?”하며 흉내를 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떤 이는 말끝마다 ‘알았어’를 덧붙이고 또 어떤 이는 ‘저기 뭐야’ ‘뭔가 하면’ ‘있잖아요’라고 하고, 어떤 이는 말을 시작할 때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을 되뇝니다.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언어습관이 있는 걸 본인보다 다른 이들이 먼저 발견할 적도 많습니다. 또 한 해를 보내며 말에 대한 격언과 시를 찾아 읽다 저는 12가지 참회의 마음으로 용서를 청하고 싶습니다.

이해인 수녀

(1)허물 없이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예의를 차리지 않고 함부로 말했으며 때로는 농담이나 유머를 섞어 그의 약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음을 용서하십시오. (2)우울과 자조 섞인 한탄과 푸념의 말을 필요 이상 반복함으로써 듣는 이를 불편하게 했음을 용서하십시오. (3)어떤 일로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 불평의 표현들을 거칠고 극단적인 언어로 내뱉음으로써 자신과 이웃의 평화를 깨뜨렸음을 용서하십시오. (4)뒷담화의 영향력을 모르지 않으면서 쉽게 합류하며 이를 멈추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용서하십시오. (5)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인내와 정성이 부족해 번번이 가로막고 자신의 말만 함으로써 그를 서운하고 외롭게 했음을 용서하십시오. (6)떠돌아다니는 어떤 소문을 들었을 때 검증도 안 된 상태에서 성급히 받아들이고 남에게 전달까지 했던 경솔함을 용서하십시오. (7)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주제로 대화를 이끌고 험담 섞인 비교급의 말을 자주 함으로써 듣는 이의 마음을 언짢게 했음을 용서하십시오. (8)두 사람 사이에 현명한 중간역할의 도움이 필요할 때 체면에 매이고 용기가 부족해 할 말을 채 못하고 비겁하게 숨었음을 용서하십시오. (9)누가 제게 신중하게 충고하는 말을 겸손히 받아들이기보다 섣부른 합리화와 분노의 표현으로 상대방을 실망시켰음을 용서하십시오. (10)위로가 필요해서 일부러 찾아온 이들에게 바쁜 것을 핑계로 따뜻하게 대하지 못하고 형식적이고 메마르게 겉도는 말로 그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음을 용서하십시오. (11)자신의 실수로 누가 제게 용서를 청했을 때 이를 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필요 이상의 잔소리와 훈계로 상대방을 더 무안하게 만들었음을 용서하십시오. (12)때로는 저 스스로 말을 잘못 한 걸 알면서도 부끄러움이 앞서 즉시 용서를 청하기보다는 내내 미루기만 하거나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했음을 용서하십시오.

갈수록 힘든 코로나19 시대의 위기를 우리 모두 사랑의 말로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그동안 말로 저지른 잘못들을 서로 용서 청하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나쁜말로 퍼져가는 바이러스를 ‘고운말습관’의 약으로 고쳐간다면 이 또한 우리 가정과 사회를 정화시켜가는 선한 영향력의 숨은 백신이 될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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