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코로나 시대 고별식

김미향 2020. 12.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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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으로 진행되던 대학원 수업도 종강을 맞았다. 이번 학기, 잊을 수 없는 풍경은 얼굴이 눈물로 범벅됐던 마지막 수업이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그 수업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을 맞으셨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학우들 모두가 힘을 합쳐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각자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교수님께 드리고 싶은 말을 스케치북에 적어 줌(zoom) 화면에 띄운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총 세 장의 스케치북을 준비했다. 첫째 장은 무난하게 “교수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로 적었다. 둘째 장은 2AM의 ‘죽어도 못 보내’ 가사를 패러디해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교수님 보내”로 만들었다. 마지막 장은 “랜선 약주, 받아주시옵소서”였다. 이 마지막 장을 위해 나는 교수님이 평소 즐겨 드시던 빨간 뚜껑의 소주와 소주잔을 준비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분명 우리 모두 얼굴을 맞대고 마지막 수업에 참여했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을 위한 작은 파티를 열고 함께 술잔을 기울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혹한 현실 탓에 랜선으로 술잔을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펐고 교수님 수업을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줌 창 속 학우들도 저마다 뭉클함에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어쩌면 ‘트렌드 전략’이라는 수업 제목에 맞게 2020년, 가장 트렌디한 고별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교수님께선 31년 이상 교수 생활을 해 오며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다. 교수님의 행복은 학생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어 주셨다.

비단 알퐁스 도데의 소설 제목을 빌리지 않더라도 ‘마지막 수업’은 언제나 슬프고 벅차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며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라는 교수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가슴속에 깊이 새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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