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 기시 마사히코 [기혜경의 내 인생의 책 ④]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2020. 12. 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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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경향신문]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연구과정에서 구술을 통해 취득하게 된 이야기들 중 분석할 수 없는 작은 일화와 단편들을 모아서 써내려간 책이다.

사회학자는 흔히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 패턴을 살핀 후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을 통계 데이터나 역사적 자료, 사회학적 이론을 통해 들추어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성소수자, 노숙인, 마사지 걸, 이민자, 조직폭력배 등이 들려준 일화를 그 어떤 평가도 배제한 채 풀어놓는다. 또 이렇다 할 줄거리가 있다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고 있지도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화자들의 목소리가 담고 있는 분노와 슬픔, 울분과 비애, 항의와 같은 다양한 감정의 결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사회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판단하지도 평가하지도, 그렇다고 방관하지도 않는 태도로 전달하고 있는 책은 서로 다른 삶 속에서 이뤄지는 결정과 판단들은 그 나름의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나아가 각각의 이야기들이 가진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예민한 문장으로 의미 없는 부스러기 같은 이야기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소중한 삶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경쟁자를 넘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받는 현대사회 속에서 각기 다른 사람들이 만나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타인은 경쟁하거나 밟고 지나가야 할 대상이 아닌 한걸음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서서 존중해야 할 대상임을 새삼 일깨운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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