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병원 못 옮기고 증상 악화 지켜만 봐야..현장은 참혹"

박채영·이창준 기자 2020. 12.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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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돌보다 확진..'코호트 격리' 요양병원 간호사 인터뷰

[경향신문]

방호복 입은 의료진, 동료들 진단검사 집단감염이 발생해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된 서울 구로구 요양병원에서 30일 레벨D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들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격리 병원 내 확산을 막기 위해 환자와 병원 근무자들이 이틀에 한 번씩 검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다수 기저질환에 거동 못해
식사 등 기본 돌봄도 힘겨워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사망
정부는 ‘병상 여유 있다’지만
전원 환자 돌려보낸 사례도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중인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간호사 김시은씨(35)는 지난 29일 기자와 전화인터뷰를 하는 동안 흐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5일부터 코호트 격리된 이 병원에서는 30일 0시까지 190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확진자 병동에서 일하던 김씨도 결국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는 “제가 감염된 것보다도 같은 병동에 남은 간호사 5명이 제몫까지 감당하면서 환자 25명을 돌봐야 하는 것이 걱정”이라며 “남은 동료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증상이 점점 더 악화돼 가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 진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미소들요양병원에는 아직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지 못한 확진자 37명이 남아 있다. 비확진자는 246명이 전원 조치돼 92명이 남아 있다. 정부는 코호트 격리 16일째인 이날에서야 “병원 내 감염관리가 적절히 되지 못하고 감염 확산이 우려된다는 판단에 따라 남은 확진자 37명을 모두 다른 병원으로 전원할 계획”이라며 “확진되지 않은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의료인력 34명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돌봄과 치료 모두 버거운 상태

미소들요양병원이 처음 코호트 격리된 직후, 김씨는 음성 판정을 받은 환자들만 수용하는 클린존 병동에 배치됐다. 하지만 확진자 병동의 동료들이 탈진해 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그는 1주일 만에 자원해서 확진자 병동으로 옮겨왔다.

“누군가는 환자들을 지켜야 한다”는 각오였지만, 현장은 상상보다 더 참혹했다. 인력이 부족해 김씨를 비롯한 간호사 6명이 환자 25명을 돌봤다. 거동할 수 없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라 식사와 대소변 처리 등 가장 기본적인 돌봄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방호복을 입은 채 환자의 기저귀를 갈고 체위를 변경하다 보면 사우나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환자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보면서도 검사 장비며 치료제가 없어 애를 태웠다. 고령에 대부분 기저질환이 있는 요양병원 환자들은 증상이 심하지 않다가도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그는 “욕창이 생기고, 가래가 까맣게 변하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져도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활력징후(Vital Sign)를 확인하면서 열과 혈압을 낮추는 등 대증요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증상이 악화된 환자 4명은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지 못하고 요양병원 안에서 사망했다. 사망한 환자들 이야기를 하던 김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도 29일 결국 확진 판정을 받았다. 현재까지 미소들요양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190명 중 68명은 김씨 같은 요양병원 종사자다.

■답답한 전원 조치

김씨는 확진자들을 빨리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옮겨주지 않는 것이 가장 답답했다고 말했다. 음성 판정을 받은 환자를 겨우 다른 병원으로 보냈더니, 그쪽 병원에서 ‘입원 직전 실시한 진단검사에서 양성 판정이 나왔다’며 환자를 다시 미소들요양병원으로 돌려보낸 일도 있었다. 그는 “뉴스를 보면 정부가 병상에 여유가 있다고 말하는데, 서울시와 보건소는 환자 전원 요청을 해도 병상이 없다고 했다”며 “다들 나 몰라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정부는 병상 여력이 생겼다고 발표하면서 ‘가용 가능한 병상이 있는데도 코호트 격리된 요양병원 확진자 전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요양병원 확진자의 경우 돌봄 요구가 더 크기 때문에 요양병원에 인력을 투입해 치료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참다못한 미소들요양병원 의료진은 지난 28일 “코호트 격리되어 일본 유람선처럼 갇혀서 죽어가는 요양병원 환자들을 구출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이날 오후까지 1만5000여명이 동의했다.

요양병원 코호트 격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반복되자 정부는 이날부터 긴급현장대응팀 3개를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요양병원 및 시설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긴급현장대응팀이 중앙방역대책본부 현장대응팀과 합동으로 현장을 방문해 초동 대응할 계획이다. 돌봄과 치료가 병행돼야 하는 확진자들을 위한 코로나19 전담 요양병원은 1월 중순쯤 개소할 예정이다.

현재 전국에는 17개 요양병원이 코로나19로 코호트 격리 중이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다른 요양병원도 돌봄인력 확보와 환자 전원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다만 언제까지 몇 명을 전원 조치시킬지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채영·이창준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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