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지나친 일상 속에 특별한 일출 풍경이 있다

글·사진 김종목 기자 2020. 12.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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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 명소는 어디에나 있다, 해는 어디서나 뜨니까

[경향신문]

바다 해맞이는 코로나19 종식 이후로 미뤄야 할 듯하다. 해는 동네에도 뜬다. 한적한 거리·골목·소공원에서 충분히 거리 두기를 유지한 채 차분하게 자신만의 해맞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숭인근린공원 부근 골목에서 바라본 도심 일출.

동해안은 예부터 해돋이로 유명했다. 겸재 정선의 <신묘년 풍악도첩> 중 ‘문암관 일출도’ 배경은 강원 고성군 삼일포 문암이다. 4명이 바위에 올라 반쯤 떠오른 붉은 해를 바라본다. 해돋이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다. 동해안 일출 중에서도 낙산사 일출이 손꼽혔다. 정선은 ‘낙산일출’을 그렸다. 단원 김홍도의 작품 중 하나가 ‘낙산사도’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해돋이를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배꽃은 벌써 지고 접동새 슬피 울 때/ 낙산 동쪽 언덕으로 의상대에 올라앉아/ 일출을 보려고 밤중에 일어나니/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는 듯/ 육룡이 해를 떠받치는 듯/ 바다에 떠오를 때 세상이 흔들리더니/ 하늘 위 치솟은 해는 터럭 한 올도 헤아릴 만큼 밝다.” 우국지정에 관한 비유가 들었다고 해석하는데, 해돋이에 관한 묘사·비유 자체로 감상해도 좋을 구절이다. 의유당은 <동명일기>에서 동해 일출의 붉은 기운을 두고 ‘진홍대단(眞紅大緞)’ 여러 칠을 펼친 듯하다고 봤다.

해돋이 앞에서 온갖 감상을 떠올리는 게 꼭 옛사람들만의 일은 아니다. 광활한 바다 수면에 부딪혀 퍼지는 붉은 해의 색조는 감성을 한껏 자극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경험과 관점을 매일의 자연현상에 대입해 세상을 해석한다. 물에 반사되는 빛의 광활함 속에서 어떤 이들은 신의 섭리를, 또 어떤 이들은 자연의 법칙을 되새긴다. 많은 사람이 여러 대가처럼 자연현상을 두고 각자의 붓질을 해가는 걸 즐긴다. 여기 기복의 염도 더해졌다. 해돋이를 보며 자신과 가족의 부와 건강을 기원한다. 일출 앞에서 다시 세상을 낙관하며 희망을 품는다.

정선의 ‘문암관 일출도’ 배경은 동해안 일출 명소 중 하나인 삼일포다. 국립중앙박물관

#왜 새해 해맞이인가

지금 새해 해맞이는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성행한다. 구글에 ‘new year’와 ‘sunrise’를 함께 검색하면 주로 한국과 일본의 일출 관련 영문 기사나 정보가 뜬다. 지역을 미국 등지로 설정해도 결과는 비슷하다.

해맞이 풍습은 한국 전통엔 없다. 정선과 정철의 일출은 새해의 그것이 아니다. 해맞이는 일본 풍습에서 유래했다. 일본인들은 1월1일 아침 해맞이를 하쓰히노데(初日の出)라 불렀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가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집단적, 주술적 성격의 새해 해맞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해는 원시 인류의 보편적 숭배 대상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왕이 태양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자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강요했다.”(경향신문 1월4일자 칼럼 ‘해맞이의 유래’) 그는 일제강점기 1월1일자 신문에 일왕 내외 사진과 함께 둥근 해 그림이 단골로 등장한 것 등을 근거로 든다. 새해 바다 첫 해가 ‘욱일승천(旭日昇天)’이라고 봤다.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 배경 중 하나였던 정동진의 해맞이 마케팅이 성공하면서 여러 지자체에 퍼져나갔다고 본다.

일제의 주입으로 시작된 해맞이가 해방 이후 이어진 것 같진 않다. 1980년대 후반에 가서야 새해 여행지로 동해 일출 명소를 추천하는 기사들이 등장한다. 1987년 연말 기사 중 하나는 새해 동해안 해돋이 여행을 두고 ‘색다른 경험’이라고 부제를 붙였다. ‘새해 첫 해맞이 여행 상품’은 언론 보도를 기준으로 하면 1994년 등장한다. 정동진 해맞이 마케팅 전인 1993년 1월1일 ‘성산 일출제’가 열렸다.

해맞이가 세시풍속처럼 자리 잡은 것에 민족주의를 과하게 대입할 일은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돌무더기에도, 둥근 달에도 기복의 염을 담아낸다. 여행 수요 증가나 해돋이 마케팅도 대중에게 먹혔겠지만, 해와 바다가 빚어내는 장엄한 광경 자체의 흡인력이 해맞이 행사 확산에도 기여했다.

모네는 아침 호텔 창밖 풍경을 두고 ‘인상, 해돋이’를 그렸다.

#창밖 해돋이 풍경도…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일출을 묘사한 그림 중 가장 유명하다. 바다도 해도, 사람도 배도 허물어지고 이지러진다. 망막에 사진처럼 덧씌워진 해와 바다 이미지를 두 번, 세 번 뒤틀며 관습을 깨트려 명작 반열에 올랐다. 작업장 공간은 프랑스 르아브르항 부근 라미라우테 호텔이다. 2014년 미국 텍사스주립대 천문·물리학과 도널드 올슨 교수는 당시 문헌 등을 비교 분석해 ‘모네가 호텔방 안에서 1872년 11월13일 오전 7시35분 그린 것’이라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코로나19 시대 호텔 창밖 해돋이 감상마저도 녹록지는 않다. 정부는 새해 연휴 기간 리조트, 호텔, 게스트하우스, 농어촌민박 등 숙박시설 예약을 객실 50% 이내로 제한했다. 지자체들은 이 기간 동해안 주요 일출 명소를 폐쇄한다. 정선과 정철이 각각 그리고 노래한 낙산도 대상이다. 속초시는 해변에 통제용 울타리를 쳤다. 강릉시도 정동진 등지를 폐쇄한다. 코레일도 1월3일까지 해돋이 상품을 비롯한 모든 기차여행 상품 운영을 중지한다.

동해안 일대는 한때 코로나19 청정지대였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일출 명소인 영일만의 포항시도 확산세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다리에 오르지 않아도 한강 해돋이를 볼 수 있다.

#동네 일출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지만, 해는 모든 곳에서 뜬다. 해돋이와 해넘이는 그저 일상이다. 바다 수평선을 뚫고 오르는 일출만 일출이 아니다. 일출을 볼 공간은 도처에 널렸다. 바다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코로나19 거리 두기 2.5단계에서 굳이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갈 일도 아니다. ‘드라이브 스루’도 해맞이 대안으로 떠오르는데, 지역 간 이동은 자제할 때다.

모네의 그림처럼 창밖 바다 일출이 벌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코로나19 시대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이는 드물다. 대신 집 밖으로 조금만 나오면 ‘개인 해맞이’를 할 공간과 여지는 충분하다.

동네 전봇대 너머 산등성으로 해가 떠올랐다. 5년 동안 이 동네 살면서 일출을 본 건 처음이다.

지난 24일 오전 일출 시각에 맞춰 동네 주변 산책로로 갔다. 산책로 너머 산등성에 붉은 해가 고개를 내밀 듯 떠올랐다. 구름을 비집고 나오거나 다시 숨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 동네에 5년을 살며 일출을 본 건 처음이다. 이 광경을 왜 놓치며 살았을까. 조선시대 달 그림은 많은데, 일출 그림이 적은 이유가 부지런함의 유무 때문이란 반우스개가 떠올랐다.

이튿날 오전 찾은 곳은 서울 종로구 숭인근린공원이다. 공원 정상부는 나무 때문에 시야가 가렸다. 사방이 작게나마 트인 골목에서 일출을 기다렸다. 빌라와 아파트, 상업용 건물 너머로 해가 떴다. 서쪽 낙산공원과 창신동 일대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햇살이 드러낸 도시 풍경은 오래 뇌리에 남을 듯했다. 간간이 공원을 오가는 이들, 골목길 따라 출근길에 나선 이들은 이 풍경에 무심했다. 다음날 뚝섬한강공원에선 빌딩군과 한강 다리, 강변북로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이른 아침 마스크를 착용한 조깅족과 산보객들이 일출을 앞뒤로 하며 뛰거나 걸어다녔다.

해돋이 감상의 관건은 날씨다. 연암 박지원도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총석정관일출·叢石亭觀日出)’에서 “하늘과 맞닿은 물만 넘실넘실해 뜰 조짐 전혀 없”다며 조바심을 나타냈다. 1일 강원, 경기, 경남은 맑다. 전라 지역엔 눈, 제주는 비 또는 눈이 예보됐다. 나머지 지역은 흐리다.

또 다른 관건은 코로나19다. 정선은 서울 남산(목멱산)에서 떠오르는 태양(목멱조돈·木覓朝暾)을 그렸는데, 1일 남산 출입은 통제된다. 서울시는 새해 연휴 기간 선유도공원, 하늘공원 등지의 출입도 제한한다. ‘숨은 해돋이 명소’로 알려진 여러 한강 다리에도 사람이 몰릴 수 있다.

동해안 일출에 미련이 남는다면, 국립공원TV(youtube.com/user/knpspr)에서 볼 수 있다. 일출 명소를 둔 여러 지자체도 자체 유튜브 채널로 일출을 생중계한다. SK이노베이션(youtube.com/user/askinnovation)은 울산사업장 해돋이를 내보낸다.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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