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들 14] 상자

한겨레 2020. 12. 3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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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7일 정부는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한 낙태죄 개정안을 내놓았다.

나체의 여성이 상자를 들고 길을 달려가다 행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상자 안에는 아기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여성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아기가 자신의 딸이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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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초단편소설, 들]#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클립아트코리아

▶바로가기 : <한겨레> 특별페이지 ‘낙태죄 폐지’ http://www.hani.co.kr/arti/delete

10월7일 정부는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한 낙태죄 개정안을 내놓았다. 바로 다음날인 10월8일 오후 에스엔에스(SNS)에 하나의 해시태그가 올라왔다.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전혜진 작가가 제안하고, 문녹주 작가가 해시태그를 만든 뒤 지금까지 20명 가까이 되는 작가가 임신중지와 그 권리를 다룬 초단편 소설을 써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와 에스엔에스 개인 계정 등에 올렸다. 같은 주제를 다채롭게 엮어낸 소설들을 작가들의 동의를 얻어 <한겨레> 낙태죄 폐지 특별 페이지에 싣는다.

※ 작품을 원문 그대로 싣습니다.

상자ㅣ정도경

나체의 여성이 상자를 들고 길을 달려가다 행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여성은 상자를 소중하게 움켜잡은 채로 횡설수설할 뿐 경찰의 질문에 조리 있는 대답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경찰은 여성을 경찰서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옷과 담요로 여성의 나체를 감싸고 물과 먹을 것을 권유하였다. 여성은 경찰이 권하는 대로 옷을 입고 담요로 몸을 감싸고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었으나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였다. 경찰이 여성이 움켜쥐고 있던 상자를 열려 하자 여성은 처음에는 저항하였으나 경찰이 부드럽게 달래자 소중히 움켜쥐고 있던 상자를 놓았다. 경찰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아기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여성은 아기가 자신의 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여성의 신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기의 머리는 상자와 함께 부검실로 옮겨졌다. 여성은 자신의 이름도 주소도 말하려 하지 않았고 여성의 손가락에는 흉터가 많고 손가락 끝이 헐어 지문이 명확하지 않았다. 여성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아기가 자신의 딸이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 말했다. 아기의 아버지 혹은 여성의 다른 가족에 대해서 경찰이 질문하자 여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기의 사망 경위와 나머지 신체 부위에 대한 경찰의 질문에 여성은 다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은 유치장에서, 아기의 머리는 부검실에서 그날 밤을 지냈다.

다음날 부검의가 출근했을 때 아기의 머리 옆에는 목이 뜯겨나간 남자의 몸이 누워 있었다. 부검의가 다가가자 아기의 머리가 부검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해하는 척 했어요.”

아기의 머리가 말했다.

“이해하는 척 했어요.”

그리고 아기의 머리는 남자의 몸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려 누워서 눈을 감았다. 아기의 머리는 다시 눈 뜨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목 잘린 남자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여성은 경찰에게 자신의 주소를 말했다. 경찰은 그곳에서 아기의 몸을 발견하였다. 남자의 머리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여성은 남자의 머리나 남자의 신원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기의 머리가 남자의 몸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경찰에게 듣고 여성은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끝>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참여 작가 정도경

※ <한겨레>는 작가의 동의를 얻어 작품을 게재합니다. 해당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발췌 및 전재를 금합니다.

▶ 바로가기 : <한겨레> 특별페이지 ‘낙태죄 폐지’ http://www.hani.co.kr/arti/delete▶바로가기 :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셀렉션 https://britg.kr/novel-selection/125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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