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떠나는 보훈처장 "보훈 둘러싼 이념논란 안타까워"

연규욱 2020. 12. 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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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채수환 정치부장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들의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보훈처. 단순해 보이는 업무영역은 때로 '이념 대립의 장'으로 변질되곤 한다. 그들이 예우해야하는 독립운동가, 전쟁 영웅, 민주 투사 등 대부분이 굴곡진 우리 근현대사의 명암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영웅의 국립묘지 안장,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 등 보훈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이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다. 그는 "정답은 항일과 반공, 민주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 세가지 요소가 동시에 일치되는 인물은 극히 적다"고 말한다. 박 처장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사람들의 공로가 이같은 이유로 폄훼되는 현실에 큰 아쉬움을 표했다.

박 처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 내내 '안보·애국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직접 연관 짓지는 않았으나 이 역시 보훈의 영역이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현상을 두고 한 일침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터뷰는 보훈처장 개각 발표 이전에 진행됐다)

―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었다. 크고 작은 의미있는 행사들을 많이 치른 것으로 안다.

▷여러 성과도 있었지만 사실 아쉬움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켜 다양한 기념사업들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로 불가피하게 사업을 일부 축소하거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경우가 있었다. 특히, 올해가 생존 참전용사 분들께서 맞이하는 사실상 마지막 10주기라 아쉬움이 더한다.

― 세월이 흐르고 있는 만큼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의 안보불감증을 우려하는 시각도 점차 옅어지고 있는 것 같다.

▷ 바로 그런 부분에서 보훈처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우리 국가유공자들을 잘 모시는 것은 우리 보훈처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나는 이것도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안보교육이다. 우리 국민들한테 나라를 사랑하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나라사랑 교육'을 해왔다. 사실 나쁜 것은 아닌데, 잘 알려졌다시피 조금 과하고 치우친 면이 있었다. 독립과 민주는 도외시하고 호국 분야에만 집중된 바 있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서 '정권 연장의 수단'이라는 식으로 오해를 하거나, 실제 그런 부분이 조금 있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여하튼 그와 같은 안보교육이 현 정권 들어 크게 줄었다.

― 보훈처를 둘러싼 그와 같은 이념 편향 논란은 올해에도 끊이질 않았다.

▷우리나라의 20세기 역사의 세 기둥을 독립과 호국, 그리고 민주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여기에 늘 이념논쟁이 있다. 친일과 항일, 반공과 용공 등이 혼재가 돼있다. 이게 현재까지도 사회갈등으로 표출된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항일과 반공, 민주를 아우르는 것이다. 근데 이 3요소가 동시에 일치되는 인물은 극히 적을 것이다. 항일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용공 경력이 있을 수 있고, 호국 반공의 인물이 친일 또는 독재의 영역에 포함돼있을 수 있다.

이렇듯 한 인물에 공과 과가 혼재돼 있는 문제 때문에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희석이 된다. 백선엽 장군? 물론 존경 받아야한다. 그런데 친일 행적이 있다. 이런 부분이 얽혀있는 것이다. 한 면만 놓고 보면 양측의 의견에 다 동의하지만, 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파란만장한 우리 근현대사를 고려하면 참 까다로운 문제다. 반복되는 논란을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겠나.

▷시간이 좀 지나야하지 않나 싶다. 지금 당장 어떻게 손을 대긴 어렵다고 본다. '친일을 고백해라, 그래야 역사가 정리된다. 친일행적을 모른 척하고 훗날 이 과를 공으로 덮으려 하면 역사정리가 안된다'는 주장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반면에 '나라에 큰 공을 세웠는데, 왜 자꾸 예전 일로 단죄하려 하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둘의 합치점을 찾아야 하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한다. 서로가 자기들 얘기만 하고 상대방 얘기는 안 들으려 하는데, 서로 듣고, 서로 이해하고, 그 폭이 점차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본다. 그전에는 중간지대가 굉장히 적었는데, 지금은 그 중간지대가 점점 넓어져가고 있고,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나 싶다. 시간이 해결해야 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 국민통합에 있어 보훈처의 역할이 큰 것 같다.

▷ 보훈처가 사실 정부부처 중 굉장히 작은 부처다. 그러나 국민통합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서다. 이를 우리가 잘 관리해야 한다. 관리한다는 표현이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같은 갈등요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측면도 있고, 또 순수하게 얘기되는 측면도 있긴 한데, 여하튼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잘 조정해야 한다.

독립과 호국 그리고 민주 등 3개 가치의 대표적인 단체들이 다 우리 소관이다. 광복회가 독립의 대표적인 단체이고, 호국은 상이군경회 등 많다. 민주 분야의 4.19, 5,18 관련 단체들도 있다. 이들의 생각과 추구하는 바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논리가 아직은 시기가 이르다고 본다. 지금과 같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잘 관리하고 끌어가는 등 아주 미미한 역할이나마 하게 되면 하나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막대한 책임에 비해 권한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외국과 비교해서 보훈처의 예산과 권한은 어떠한가.

▷미국은 제대군인부라는 별도의 부처가 있다. 부처 예산이 국방부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물론 전쟁을 지속하고 있는 국가여서 그런 측면도 있다.

앞서 안보교육을 통해 애국심을 길러야 된다고 말했는데, 보훈처가 잘 돼야 젊은이들이 애국심을 가질 수 있다. 미국 제대군인부 인력은 관련 업무 종사자가 총 39만명이다. 우리는 1만명에 불과하다. 예산도 우리는 5조 6000억원이다. 이 정도로는 목표를 달성하기가 힘들다.

― 지난 11월 10일 부산에서 열린 '6·25전쟁 유엔참전국 대표회의'에선 우리나라와 22개 참전국 대표단이 모여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이번 공동선언문에는 유엔참전용사님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외국 참전용사와 후손의 생활여건 개선을 위한 정책과 의료지원 교류를 추진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있다. 이는 참전으로 맺어진 인연을 더욱 확대·발전시켜나가면서 상호 협력과 공조체제 구축에 모든 참전국이 뜻을 모았다는데 의의가 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한주형 기자]

"장군 칭호 가끔 민망하기도...부하들과 동고동락한 GOP연대장 시절 가장 기억에 남아"

1980년 소위로 임관해 36년간 군인의 길을 걷다 퇴역한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여전히 '박 장군'이라는 칭호가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는 전쟁을 치러보지도 못한 내가 장군으로 불리는 게 가끔은 어색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 전역을 한 지 꽤 됐다.

▷ 지금도 '박장군~ 박장군~'이란 소리가 제가 가장 듣기에 편한 호칭이긴 하다. 내가 평생을 군생활을 했는데, 전투경험이 없지 않나. 사실 전쟁경험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장군이냐는 생각을 가끔 한다. 부끄럽다기 보다는 장군이라는 소리가 편치않을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 군인으로서 좌우명 같은 게 있었나.

▷ 좌우명이라기보다는 늘 부하들한테 '도전'을 강조했다. 군인은 소대장부터 연대장, 사단장 직을 수행할 때 늘 처음 해보는 직책을 수행해야 한다. 사전에 연습할 시간이 없이 바로 투입된다. 즉시성이 늘 중요하다. 그렇다보니 뭔가를 늘 감수해야 하는데, 처음이라 도전을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주저하다보면 시기를 놓치게 되고, 계속 도전을 기피하게 된다. 나는 '계속 감수하겠다고 생각하가 나가보라'고 늘 지시했다.

사실 군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 자체가 그렇지 않나. 감수를 하고 도전을 하면 실패하는 것도 있지만 성취하는 경우 큰 보람이 된다. 도전을 안했으면, 가보지 않았으면, 얻지 못했을 성취감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안 죽으려고 애를 쓴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늘 그런 점을 부하들한테 강조를 하곤 했다.

― 기억에 남는 군생활의 장면이 있나

▷ 연대장을 강원도 화천에서도 가장 오지인 15사단 38연대에서 했다. 사단에서 바운더리 내 민가가 단 한 채도 없는 유일한 연대였다. 철책 GOP를 담당하는 철책 경계부대였는데, 굉장히 힘들고 고생스럽고, 부하들이 다치기도 많이 다쳤다. 늘 실탄과 수류탄을 끼고 다니니 자살, 오발 사고 등 사고에 대한 걱정을 늘 안고 지냈다. 그런 환경 속에서 18개월간 부하들과 동고동락한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군인으로서 전투경험이 없다는 걸 평소 조금 민망해 했는데, 당시 GOP 경계를 잘 지켜낸 것을 전투 대신 영예롭게 생각하고 있다.

▶▶He is…

△1956년 부산 출생 △1980년 육군사관학교 36기 학사 △1998년 한남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 석사 △2003년 육군 제15보병사단 38연대 연대장 △2009년 육군 제5보병사단 사단장 △2011년 국방부 육군 개혁실 실장 △2012 국방대학교 총장 △2014년 육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2017년 전잰기념관 관장 및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2019년~2020년 제30대 국가보훈처장

[정리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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