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혼자 독립리그?..그 누구도 공감 못 하는 허민의 폭주 [김은진의 다이아몬드+]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2020. 12. 30. 18: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경향]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연습경기에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2월18일 미국 애리조나 피오리아 스프링캠프에서 키움 타자들은 ‘선발투수 허민’을 상대했다. 캠프 연습경기에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이 선발 등판해 2이닝씩이나 던졌다. 당시 구단은 “선수단 요청에 그동안 고사하던 허민 의장이 수락한 것”이라고 알리며 “아마추어의 공이 아니라며 선수들이 감탄할 정도였다”는 미담으로 소개했다.

며칠 뒤 투손으로 캠프를 옮긴 키움 선수들을 만났을 때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축 선수 A와 B는 “이게 과연 프로 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구단이 전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선수들은 분명히 허민 의장의 행위를 구단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맞춰줘야 했던 ‘갑질’로 여기고 있었다.

재미를 붙였는지 허민 의장은 이후 6월에는 고양 훈련장에서 또 마운드에 올랐다. 퇴근하려던 2군 선수들이 불려나가 그의 너클볼을 구경해야 했다. 구단은 또 한 번 “선수들이 자청했다”고 포장했다. 결국 이 행태는 당시 현장에 있던 한 팬의 카메라에 담겨 외부에 알려진 끝에 ’팬 사찰 의혹’으로까지 이어진 시발점이 됐다. 이에 KBO가 ‘품위손상행위’로 징계하자 허민 의장은 불복하겠다며 소송전을 선언했다. 희대의 캐릭터임을 다시 한 번 과시 중이다.

KBO는 지난 28일 상벌위원회에서 ‘팬 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구단과 김치현 단장에게 엄중 경고하고 허민 의장에 대해서는 2개월 직무 정지 조치했다. KBO가 상벌위원회를 연 것은 키움 선수였던 이택근의 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팬 사찰 의혹에 대해 엄중경고로 그친 것은 수사권 없는 KBO가 진위 여부를 정확하게 조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지만, 허민 의장을 징계한 것은 갑질 행위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선수 상대 투구 행위가 분명히 존재했고, 알려진 것만 두 차례이며, 소속 선수들이 “억지로 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KBO의 징계는 리그의 운영과 질서를 위한 판단에서 나온다. 그동안 선수들도 잘못을 저지르면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고 연봉이 깎였다. 꼭 범법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고소나 고발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리그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물의를 빚으면 징계 받았고 사과했다. KBO리그의 일원이기 때문이었다.

허민 의장과 키움 구단은 그동안 반복된 논란에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모르쇠와 침묵으로 마치 세상을 ‘왕따’ 시키듯 버텨왔다. 사실상 처음으로 입을 연 지금은 ”미안하다”가 아닌 “소송하겠다”고 대응하고 있다. 허민과 키움의 선언이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핵심 사유다. 심지어 야구 원로 모임인 일구회에 이어 늘 KBO와 각을 세우던 선수협마저 하나가 돼 KBO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다.

허민의 야구놀이는 이미 수많은 팬들과 언론의 지탄을 받았다. KBO는 그나마 ‘야구 놀이’를 통한 갑질에 대해서만 징계했으나, 여론은 마치 판타지 게임하듯 경기 운영에 간섭하고 감독을 바꿔버리는 갑질에 대해서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최소한 품위있고 상식있는 구단주로서 선을 넘은 갑질 행위에 대해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허민 의장이 등장한 이후 키움 구단 내부에서도 누구 하나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 프런트 수뇌부가 감정 없는 로보트처럼 지시에만 따른다.

키움 구단이 지난 29일 KBO 징계에 불복하겠다며 발표한 입장문 제목은 ‘서울 히어로즈 입장문’이었다. 본문에는 “구단은 이사회 의장의 투구 등 행위에 대한 KBO 징계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KBO 징계에 불복하겠다는 주체를 분명 구단으로 밝혀놓고, 이후 언론 상대로는 “개인 징계이므로 사법 절차는 허민 의장 개인이 한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을 하고 있다.

키움은 여전히 사령탑과 대표이사를 선임하지 못한 채로 구단 내부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해왔다. 현재로서는 인사에 허민 의장의 의사가 크게 반영되는 구조인데, 직무정지 된 허민 의장은 대표 선임의 필수 절차인 이사회와 주주총회에 관여할 수 없게 됐다. 굳이 구단 명의로 입장문을 발표하더니 소송 건은 개인 문제라며 허민과 구단 업무 사이에 선을 긋는 의도도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28일부터 직무정지 상태로 전환됐음에도 구단 명의의 입장문을 냈듯이 허민 의장이 뒤에서 어떤 지시를 내리는지에 대해서까지는 감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허민 의장과 키움 구단은 입장문 발표 이후 아직 어떤 조치도 진행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이미 ‘소송 선언’만으로도 리그 질서와 분위기를 다시 한 번 완전히 헤집어놨다.

KBO 역시 강경하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이번 징계는 누구도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상징적 의미다. 한계가 있지만 할 수 있는 한 직무 정지 상태에 대한 감시는 계속 할 것”이라며 “리그 질서와 가치를 지키는 일에 사법기관 판단을 받겠다니 유감이다”고 말했다.

리그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의 상식 밖 인물은 없었다. 리그를 떠날 계획이 없다면 착각도 깨야 한다. KBO리그는 ‘너클볼러 허민’의 고향 독립리그가 아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