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휩쓴 2020년, 동물들에겐 무슨 일이

김지숙 2020. 12. 3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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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애피가 꼽은 2020 10대 동물뉴스
해빙이 일찍 녹아 주 먹이인 물범 사냥이 불가능해지자 북극곰이 해변에 올라 바닷새의 알을 포식하고 있다. 에반 리처드슨 제공.

그 어느 때보다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뒤돌아보게 했던 2020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연초부터 인간들은 전세계적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순식간에 하늘길이 끊기고, 무서운 속도로 감염자가 늘어났으며,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함부로 먹어댔던 행위의 위험성도 점차 드러났다.

‘21세기 최악의 전염병’이 할퀸 건 인간동물 뿐이 아니었다. 인수공통전염병은 스스로 거리두기를 못하는 축산 농장의 밍크, 돼지들의 홀로코스트를 불러왔다. 수 개월간 이어진 호주 산불은 ‘기후 종말’의 끔찍한 미래를 경고했으며,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고래들은 수족관에서 삶을 마감했다.

좋은 일보다 슬픈 일이, 안녕보다 고난이 이어진 한 해였지만 농장을 탈출한 돼지의 새 삶터가 마련되고, 잔인한 전기 도살이 금지된 한 해이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 동물들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애피가 10대 동물뉴스를 정리했다.

1. 그을린 코알라와 굶주린 북극곰

1월 검게 그을린 코알라가 가까스로 구조돼 물을 받아먹는 충격적인 모습이 공개됐다. 2019년 9월부터 호주 전역에서 수 개월간 이어진 산불로 인해 약 3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서도 코알라는 최대 피해자였다. 주요 서식지인 동남부 유칼립투스 숲이 불타며 6만 마리 이상의 코알라가 숨졌다. 뉴사우스웨일즈주 의회는 인간의 개입이 없다면 2050년 이전에 코알라가 멸종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산불은 기록적인 가뭄과 이상고온, 강풍이 겹쳐 재앙이 됐다는 분석이다. 당시 호주 대륙 곳곳에서 한달 동안 기온 40도가 넘는 날이 열흘 이상 이어지며 ‘기후 재앙’의 운명을 예고했다.

커들 크리크에서 구출된 코알라가 한 손에 생수병을 움켜쥔 채 소방대원이 건네주는 물을 마시고 있다. 오크뱅크 밸라나 카운티 소방대 제공.

북극에서도 기후위기는 극명했다. 기온 상승으로 해빙이 일찍 시작된 북극에서는 곰들이 먹이를 찾기 힘들자 바닷새의 알로 굶주림을 해결하는 현상이 목격됐다. 그러나 북극곰에게 오리알은 애초 먹이감이었던 물범을 대체하기란 턱없이 부족한 에너지원이다.

2. 인간과 동물의 관계 반성케 한 ‘코로나19’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선언했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원인불명의 집단 폐렴이 발병한 지 넉달 만의 일이다. 1월 박쥐에서 코로나19 감염증의 병원체와 동일한 바이러스가 검출되며 ‘바이러스의 저주지’로 박쥐가 꼽히기 시작했다.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파는 중국의 시장 모습. 가축과 야생동물이 모여있고, 도살과 정육 등이 한데 이뤄지는 환경에서는, 바이러스의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종간 감염(스필오버)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한 박쥐에게서 인수공통감염병이 옮았다고?’ 이 환경을 가능하게한 것이 인간이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 등 인수공통감염병의 진원지를 ‘야생동물 시장’(wet market)으로 꼽았다.

박쥐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살아있는 동물들을 거래하는 시장에서 바이러스가 종간 전파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 “팬데믹의 근본 원인은 동물학대 있다”며 코로나19가 자연 착취적인 인간의 태도가 부른 재앙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자신의 힘으로 나는 유일한 포유류인 박쥐는 오랜 진화과정에서 비행에 힘입어 종 다양성과 함께 바이러스에 대한 내성을 얻었다. 위키피디아 코먼스

3. 팬데믹으로 죽어간 밍크와 돼지들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건 인간뿐이 아니었다. 공장식 축산으로 평생을 철창에서 지냈던 밍크와 돼지들은 ‘살처분’이라는 대규모 죽음을 맞아야 했다. 밍크들의 비극은 4월26일 네덜란드 농장 두 곳의 밍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며 시작됐다. 밍크 뿐 아니라 농장에서 키우던 고양이, 노동자들에게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되며 네덜란드는 56개 농장의 밍크 수십만 마리를 살처분했고, 2020년 3월까지 농장을 폐쇄했다.

유럽에 이어 미국 내에서도 밍크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확인된 가운데 프랑스가 2025년까지 밍크농장을 전면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원보이스 제공

네덜란드에 이어 스페인, 덴마크, 미국 등지에서도 밍크농장의 집담 감염이 확인됐다. 특히 덴마크는 밍크농장 안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가 확인돼 자국 내 1700만 마리 밍크를 모두 살처분 할 계획을 발표했다 번복했다. 문제로 지적된 것은 바로 공장식 밀집사육이었다.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밀집 사육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었다.

대표적인 공장식 축산 동물인 돼지도 피해를 입었다. 5월 미국의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심각해지자 락다운(도시 봉쇄)로 정육 공장이 멈춰버렸다. 출하처가 없는 농장주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돼지들을 살처분했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코로나19 육류대란 사태로 각각 약 200만 마리의 돼지와 닭이 농장에서 자체 살처분 됐을 거라고 추정했다.

4. 대법원 “개 전기도살은 동물학대”

다섯번 째 재판 끝에 개의 전기도살이 위법으로 판명됐다. 4월9일 대법원은 전기봉을 이용한 개 도살이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동물학대’ 행위라면서,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아무개씨(68)의 유죄를 확정했다. 이씨는 2011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연간 30마리의 개를 전기봉으로 죽였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동물보호단체 행강, 동물자유연대는 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경찰 등 수사기관이 이번 판례를 활용하여 불법적인 개 도살을 엄단하라고 촉구했다. 카라 제공

동물단체들은 일제히 환영했다. 식용견 도축이 대부분 전기도살 방식으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이 판결이 개 식용 산업 종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의 서국화 공동대표는 당시 애피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전기도살도 잔인한 방법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동물보호법 위반을 하지 않는 도살은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5. 뉴 노멀 채식, 학교·군대 급식까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채식 열풍’이 거셌다. 여러 편의점과 햄버거 프랜차이즈 등에서 비건 라면, 채식 버거 등 상품을 내놓은데 이어, 단체 급식에서도 채식 선택권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내년부터는 군대에서도 채식 위주 식단이 제공된다. 12월27일 국방부 관계자는 “내년부터 채식을 원하는 병사들을 위해 고기나 햄 등 육류가 들어가지 않는 식단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9월 추석을 맞아 경기 양주 25사단을 방문해 신병교육대대 장병들에게 배식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학교에서도 채식 선택 급식을 도입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부터 주1~3회 채식급식을 이어온 전라북도에 이어 울산시도 올 10월부터 200여개 학교에서 매달 2회씩 고기 없는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인천시는 내년부터 초·중·고교 2곳씩 모두 6개 선도학교를 선정해 채식 선택 급식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6. 죽어서야 수족관을 벗어난 고래들

벨루가 ‘루이’, 큰돌고래 ‘안덕’과 ‘고아롱’. 모두 올해 수족관에서 삶을 마감한 고래들이다. 2020년은 유난히 고래들의 죽음이 이어진 한 해였다. 7월21일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의 벨루가 루이가 12살 나이로 단명한 데 이어, 다음날인 22일 울산 남구 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고아롱이 폐사했다. 제주 마린파크에서도 큰돌고래 안덕이 8월에 폐사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더 늦기 전에 고래류 사육시설 점검과 야생 방류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벨루가의 등에 올라탄 조련사. 핫핑크돌핀스 제공

앞서 6월엔 ‘벨루가 서핑’ 등 체험프로그램이 큰 논란을 빚었다. 경남 거제의 거제씨월드가 20여 만원의 체험비를 받고 흰고래의 등에 타거나 헤엄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것이 드러나 공분을 산 것.

2014년 개장 뒤 연이어 돌고래가 폐사해 ‘죽음의 수족관’으로 불렸던 이 시설에서 지난해에도 돌고래 2마리가 죽은 것이 추가로 알려지며, 해양수산부가 전국 7곳 고래류 수족관의 시설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7. 아직도 반달곰을 먹겠다는 사람들

6월 경기도의 한 사육곰 농가가 곰을 불법적으로 도살하여 판매한 현장이 동물단체에게 포착됐다. 경기도 용인, 여주 등에서 사육곰 100여 마리를 이 농가는 “당일 채취한 웅담을 한정 수량으로 순착순 판매”한다는 광고로 소비자를 모집해 현장에서 곰을 도살, 도축하는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경기도 여주의 한 사육곰 농가에서 곰을 불법적으로 도살, 판매한 현장이 적발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해당 농가는 2016년부터 매년 곰을 증식시키고 판매를 시도하는 등 불법을 저질렀지만 처벌이 미약해 같은 문제가 반복돼 왔다. 지난 7월에는 이 농가에서 탈출한 새끼곰이 농수로에 빠져 119구조대에 구조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새끼곰은 다시 농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불법 증식된 개체를 몰수하더라도 보호할 국가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2021년 예산에 국내 불법증식 사육곰을 몰수·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포함시켰다.

8. 살아남은 돼지 새벽이의 집이 생기다

경기도 한 종돈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에게 새로운 삶터가 마련됐다. 국내 최초의 농장동물 생츄어리(Sanctuary∙보금자리)가 마련된 것. 2019년 7월 경기도 화성시 한 돼지농가에서 동물권단체 디엑스이 코리아(DxE Korea)의 공개구조로 세상에 나온 새벽이는 그동안 활동가의 자택, 동물보호소 등에서 지냈으나 몸무게가 100㎏에 육박하게 자라나 평생의 보금자리가 필요한 상태였다.

지난해 7월 경기도 화성시 한 종돈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가 5월25일 새 삶터인 ‘새벽이 생츄어리’에 도착해 진흙목욕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6월 경기도 한 지역에 마련된 ‘새벽이 생츄어리’에 입주하던 날, 새벽이는 돼지 특유의 진흙 목욕과 ‘수박 먹방’을 선보여 보는 이들에게 남다른 감동을 전했다.

9. “어류도 고통을 느끼는 동물”

동물권 인식이 어류의 고통까지 확대된 한 해이기도 했다. 올해 초 동물·환경단체는 강원도 화천군의 산천어축제의 주최인 재단법인과 화천군수를 동물학대 혐의로 고발했다. 2km 얼음 벌판 아래 굶주린 양식 산천어들을 풀어놓고, 인위적으로 잡는 행위가 불필요한 상해와 죽음을 유발한다는 이유였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시위 도구로 길바닥에 내던진 어류양식업자들도 고발됐다. 11월27일 경남어류양식협회는 정부의 일본산 활어 수입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며 일본산 방어와 참돔을 산 채로 길에 던져 동물학대 논란을 일으켰다. 협회를 고발한 동물해방물결은 “어류 또한 느낀 다는 것은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라며 이들의 행위가 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0. 끝나지 않은 실험동물의 비극

국내서는 낯선 ‘고양이 실험’의 실체가 드러났다. 서울대병원에서 2015년부터 3년 간 진행한 난청 보조기구 실험에서 고양이들이 인공적으로 귀가 먼 뒤 방치되다 고통사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실험에 동원됐던 고양이 6마리는 열악한 사육환경 탓에 허피스, 구내염 등을 앓다가 실험이 종료되자 안락사 됐다. 실험동물 공급처가 불분명해 유기·유실 동물 의혹도 제기됐다. 담당 교수는 지난 11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한편, 이런 출처불명의 실험동물 유입을 막고자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다. 지난해 경북대 수의대학에서 실습견으로 지내다 죽은 ‘건강이’의 이름의 이름 딴 ‘건강이법’이다. 수의대학 번식실습에 동원됐던 건강이는 담당 교수가 대구 칠성시장 내 건강원에서 사온 개로, 여러 질병을 앓고 있었지만 수술 뒤에도 한달 넘게 실습에 이용되다 사육실에서 폐사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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