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위성정당에 거대여당 독주, 추·윤 갈등까지..2020년 정치 결정적 장면

임지선 기자 2020. 12. 30. 15: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위성정당 난립부터 거대 여당 출현과 입법 독주, 초라한 성적표 받은 야당.’

2020년 한국 정치의 결정적 장면은 모두 4·15 총선에서 시작됐다. 총선을 위해 여야는 ‘꼼수’로 위성 정당을 만들었고, 총선 결과로 거대 여당이 탄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74석을 얻고 거친 입법 독주를 보였으며, 국민의힘은 ‘간판’을 바꿔달고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했다. ‘검찰개혁’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은 ‘검찰개혁’ 명분은 사라지고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까지 낳았다. 총선의 여파가 가라앉지도 않은 시점에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가 터졌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도 불거졌다. 이로 인해 대선의 ‘가늠자’로 볼 수 있는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까지 생겨났다. 올 한해 한국 정치의 여섯 가지 결정적인 장면을 꼽았다.

시민사회단체 소속 대표자들이 지난 3월 24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위헌적 비례위성정당 해산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위성정당 난립 = 지난 4월 15일 21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투표용지의 길이는 51.9㎝였다. 정당명부식 1인 2표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총선 이래 역대 가장 길었다. 유례없이 ‘비례 정당’들이 난립했던 탓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정의당과 뜻을 모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내놨다.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다양성을 이유로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러자 통합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허점을 이용해 ‘꼼수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고, 이에 총선에서 열세가 예상되자 민주당도 약속을 뒤엎고 ‘위성 정당’ 만들기에 합류했다. 약속을 지키자고 외쳐야 할 정당들이 되레 앞장서서 자신들이 한 약속을 뒤집었다. 유권자들은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 등 정당 이름을 헷갈려했다. 특히 총선 과정에서 야당은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이 합당하고 미래통합당까지 거치면서 올해는 유독 정당 이름 탄생의 ‘홍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7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된 뒤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 = 문재인 대통령 집권 4년차에 치러진 4·15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으로 끝났다. ‘정권심판론’이 나올 법한 시기였지만 야당이 뚜렷한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고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은 집권여당 174석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174석과 범여권 의석까지 더하면 어떠한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춘 셈이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내세워 원구성 협상 때부터 힘으로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국회 모든 법안의 길목으로 통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가져갔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통행이라는 점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다른 상임위원장직까지 아예 ‘보이콧’(거부) 해버렸다. 의석수에 이어 국회 상임위원장마저 ‘18 대 0’ 체제가 형성된 순간이다. 이때부터 민주당은 여야 이견이 큰 임대차 3법, 검·경 수사권 조정,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 등 쟁점 법안을 일괄 처리했다. 거친 입법 독주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냈다.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라 제기됐다. 민주당이 지난해 야당에 비토권이 있다면서 정당성을 강조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마저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시킨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보수야권에서는 ‘의회독재’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지난 12월16일자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


■초라한 성적 야당, 탈바꿈 몸부림 =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개헌을 겨우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인 103석을 얻었다. ‘태극기 세력’과 거리를 두지 못했고, 황교안 당시 대표의 ‘n번방 호기심’ 발언 등으로 보수정당 역사상 가장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통합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에게 지휘를 맡겼다. 김 위원장은 당의 이름을 국민의힘으로 교체했고, 전통적 보수 노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경제민주화를 비롯해 “빵먹을 자유”를 거론하며 기본소득도 정강정책에 담았다. 김 위원장은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 당내에서 나온 5·18 망언 등에 사과하고 지난 8월엔 직접 광주를 찾아 무릎을 꿇기도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외연 확장을 위한 ‘몸부림’은 아직까지 당 전체로 확산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평가다. 단적으로 지난 15일 김 위원장이 당 출신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사과한 데서 잘 나타난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취임 직후부터 사과를 공언해왔지만 당내 반발로 여러 차례 연기한 끝에 이뤄졌다. 이때문에 ‘김종인 비대위 체제’ 이후에 국민의힘이 도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왼쪽)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보궐선거 낳은 권력형 성범죄= 권력형 성범죄는 올 한해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충격을 안겨준 이슈다. 4·15 총선이 끝나고 일주일 뒤인 23일 오거돈 당시 부산시장이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성추행 의혹으로 사퇴를 했고 검찰에 기소된 상태다. 석달 뒤인 지난 7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의 실종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역시 성추행 의혹을 받았다. 특히 고 박 전 시장의 사건에서 민주당이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 건의 권력형 성범죄는 내년 4월 서울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로 이어졌다. 내년 4월 보궐선거는 특히 차기 대선을 1년 가량 앞둔 시점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정치적 의미가 크다.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각별히 신경쓰는 이유다. 보궐선거 결과가 대선 결과와 100% 연동되진 않겠지만 어느 당이든 선거에서 지게 되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보궐선거 직전까지 당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선거를 진두지휘했다는 점에서 두 지도부의 미래가 달린 선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권도현 기자·연합뉴스


■추미애-윤석열 갈등= 올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일 테다. 정부·여당은 ‘검찰개혁’ 명분 아래 공수처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윤 총장을 징계하려고 했다. ‘검찰개혁’을 제도가 아닌 사람에만 치중해서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으나 여권은 ‘직진’했다. 법무부 징계위원회는 2개월 정직 결정을 내렸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으나 법원은 윤 총장이 낸 ‘정직 2개월’ 징계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윤 총장은 극적으로 복귀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사태가 아직 완전히 수습되진 않았다. 극단으로 치닫은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은 여권이 ‘윤석열 때리기’를 할 수록 대선주자로서 윤 총장의 지지율만 높아진다는 사실만 입증해줬다. 특히 법원의 직무정지 무효 결정으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이 약화될 것이라를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권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얻은 게 없다.

편법 증여와 부친의 보도 무마 의혹이 제기된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탈당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탈당’이라는 당이 생길 판 =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들은 총선 이후 소속 의원들이 ‘부동산’ 등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자 ‘탈당’으로 꼬리를 잘랐다. 민주당에선 김홍걸·양정숙·이상직 의원이, 국민의힘에선 박덕흠·전봉민 의원이 당적을 버렸다. 김홍걸 의원은 4·15 총선 후보자 등록 시 부동산을 숨겼다는 의혹으로, 양정숙 의원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당에서 제명됐다. 비례대표 의원은 당에서 제명이 되더라도 의원직 신분을 유지한다.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은 대량해고 사태 책임론이 제기되고 민주당 윤리감찰단 조사대상에 올라 제명 조치가 임박하자, 스스로 탈당을 선언했다.

국민의힘에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으로 가족 명의 건설회사를 통해 피감기관에서 수천억원대 공사를 특혜 수주했다는 의혹을 받은 박덕흠 의원이 지난 9월 자진탈당했다. 21대 국회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전봉민 의원도 편법 증여 의혹과 부친이 3000만원으로 기자를 회유하려 했다는 논란이 커지자 지난 22일 탈당을 택했다.

여야는 소속 의원이 논란이 되자 ‘제명’ 또는 ‘자진탈당’의 길을 택하도록 하면서 진상조사 한번 하지 않았다. 선거때 공천을 한 책임을 지지 않는 건 물론이다. 탈당하더라도 의원 신분이 유지되고 ‘1억 연봉’도 고스란히 받는다. 사실상 탈당은 논란의 뒤로 숨는 것일뿐 의원을 징계하는 절차는 아니라는 점에서 여야 모두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는 “이러다 국회에 ‘탈당’이라는 새로운 교섭단체가 출현하겠다”며 “무책임한 탈당정치는 그만하라. 탈당은 면죄부가 아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