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역사에 등장하는 감옥, 그리고 동부구치소 집단 감염 사태

2020. 12. 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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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의 안전사회] 최악의 구치소 집단감염, 위기 극복의 계기로 삼아야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감사원 감사 등 해야

교도소나 구치소와 같은 집단수용시설은 감염병 창궐 시 대규모 집단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 장소다. 이는 현대에 들어와 자리매김한 것이 아니라 감염병의 역사에서 일찍이 많은 사례와 기록들이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방역 당국을 비롯해 각 국의 정부는 전파력이 강한 감염병이 확산될 때 그 어느 곳보다도 강력한 예방 대책과 방역 수칙을 이곳에서 적용한다. 코로나가 본격 유행하기 시작한 지난 봄 미국, 이탈리아, 브라질 등에서 강력한 방역조치로 수감자들에 대해 면회 금지 등의 조치를 하자 불만을 품은 재소자들이 과격한 난동과 폭동을 일으켜 상당한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앞서 벌어진 다른 국가의 코로나 관련 교도소 사태와 집단수용시설에서 벌어진 역사적 감염병 확산 사례 등을 정부가 조금만이라도 살폈더라면 우리나라에서 최악의 구치소 대규모 집단감염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치소 집단감염으로 인해 사망자까지 나오고 확진자 수도 계속 늘어나는 등 그 여파가 어디까지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어느 정도 파악되고 있지만 정작 실제 책임이 있는 장관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책임을 놓고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 전쟁에서 이번 사건은 치욕의 한 페이지를 기록될 것임에 틀림없다. 코로나 예방과 함께 위기소통에서도 완전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가 물위로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K-방역의 명성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구치소 내 최초의 확진자 발생에서부터 확산 대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문제가 불거지고 난 뒤 관련 기관과 관련자들의 언행을 낱낱이 살펴 그 책임을 따지고 결과를 바탕으로 엄중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감사원 등 독립적인 기관 등이 이를 조사한 뒤 필요하면 엄중한 문책과 민사적인 배상 및 직무유기에 따른 과실 치사상 등의 형사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감염병 역사에 등장하는 감옥열, 감옥이 집단감염의 온상 증명

감염병의 역사에는 감옥열(jail fever)이 등장한다. 이는 주로 18세기 영국 교도소에서 흔히 발생했던 감염병을 지칭하는 것으로 현대에 들어와 이 감염병을 발진티푸스로 보고 있다. 이 역병은 감옥열뿐만 아니라 막사열, 선박열, 기근열 등으로도 불려왔다. 그 특징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시설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수감자들이 발진티푸스균을 옮기는 이가 쉽게 퍼지는 어둡고 더러운 방에 모일 때 이 역병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수감자들에게 “다음 법정이 열릴 때까지 수감”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이들에게는 종종 사형 선고로 들렸다. 법정에 끌려온 수감자들은 때때로 재판관 등 법정에 있던 구성원을 감염시켰다.

1730년 영국 톤턴(Taunton)에서 열린 사순절 법정에서 감염된 감옥열로 귀족과 고위 보안관, 군인을 포함한 수백 명이 사망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사형죄로 공개 처형된 사람보다 감옥열로 숨진 수감자들이 더 많았다. 1759년 영국 당국은 매년 수감자의 4분의 1이 이 역병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다. 감옥과 법정에서 확산된 이 감염병은 다시 도시 일반 인구로 옮겨졌다.

감옥이나 선박 등에서는 감염자가 한 명이라고 발생하면 순식간에 그 곳에 함께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대형유람선과 교도소 등에서 심각한 집단감염이 벌어진 사례를 우리는 유행 초기부터 많은 외국 사례를 통해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교훈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실패 뒤 법무부 장관 등 법무부와 서울시 등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언행을 하고 있다.

구치·교도소 수감자는 유령집단이어서 관리 소홀(?)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은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이었던 걸까. 아니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주의했다면 적어도 집단감염만큼은 막을 수 있었던 일인가. 막을 수 있었다면 왜 막지 못했는가. 이를 톺아보고 성찰해 교훈을 얻음으로써 제2의 동부구치소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일찍이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 칼럼(4월 16일)을 기고해 우리 사회는 새로운 종류의 노동 계급으로 분열하고 이에 따른 불평등이 초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1)코로나 위기 이전과 동일한 급여를 받는 원격 근무 가능 노동자(The Remotes) (2)간호사, 트럭 운전사, 창고 및 운송 근로자, 경찰관, 소방관, 군대 등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구실을 하는 필수 노동자(The Essentials) (3)코로나 위기로 일시적으로 일자리를 잃었거나 무급 휴직자 등과 같은 무급자(The Unpaid) (4)감옥 수용자, 노숙자 보호소 수용자 등 일반 시민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유령집단(The Forgotten) 등 4가지 노동계급을 이야기했다. 특히 유령집단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거의 불가능한 사람들로 분류했다.

라이시의 예측에 따르면 동부구치소 수감자들은 유령집단이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거의 불가능해 코로나 감염에 매우 취약한 집단이다. 그의 예측이 아니더라도 구치소나 교도소, 특히 아파트 형태의 밀집 생활을 하는 동부구치소의 경우 그 어느 곳보다도 마스크 착용과 선제적인 감염 여부 검사 등 강력한 방역 조치가 필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불거진 뒤 드러난 내용만 살펴보아도 담당 부처인 법무부를 비롯해 정부 어느 곳에서도 이곳에 대해 집단감염을 막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들이 유령집단이 아니라 사회에서 권력과 부를 지닌 집단이었다면 정부가 이처럼 허술하게 방역을 하고 대규모 집단감염이 벌어질 때까지 나몰라 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법무부장관 책임 회피는 국민 분노 유발, 위험소통 원칙 허물어

둘째, 코로나가 유행한 뒤에도 구치소나 교도소 등에서 일하거나 이를 관리하는 법무부 책임자들이 과연 코로나의 특성과 코로나 확진자가 이런 곳에서 한 명이라도 나오면 순식간에 수십, 수백 명으로 퍼질 수 있다는 교육을 지난 1년간 받은 적이 있는지, 받았다면 고위 공무원들은 이런 교육을 받았는지, 또 관련 예방·대응 매뉴얼이 있는지, 있다면 이를 숙지하고 있었는지 의심이 간다.

정부 시설에서 이런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졌다면 법무부와 서울시뿐만 아니라 질병관리청과 총리실. 청와대 등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장 큰 책임과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시설을 직접 관리하고 시설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법무부이다. 그런데도 법무부장관이 아닌 총리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민에게 먼저 사과한 것은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점에서 손가락질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

재난이나 위기 시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또 인간 사회에서 실수나 오판은 늘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위험(위기) 소통의 원칙 가운데 하나가 실수나 잘못이 있었을 경우 즉시 이를 인정하고 그 잘못에 대해 국민이나 이해관계자에게 사과하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이를 반드시 실천하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동부 구치소 사태 이후 벌어진 일을 보면 이런 원칙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12월 들어 구치소뿐만 아니라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에서 집단감염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동일집단 격리가 이루어진 곳에서 많은 사망자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1월 중 사망자가 1천명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감염병 방역의 요체는 감염자와 환자 발생수를 줄이는 것과 사망자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요양시설에서도 최근 기본적인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무엇이 중요하고 우선순위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와 함께 정부 부처 간, 중앙정부과 지자체 간, 정부와 민간병원 간 소통과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처음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동부 구치소 사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길은 여기에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늑장 집단면역 확보 우려와 코로나 확산세가 12월 내내 꺾이지 않고 사망자가 급증하는 등 케이방역의 한계, 그리고 정부 시설 내에서의 대규모 집단감염이라는 삼각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적어도 오는 3월에는 국민이 이러한 코로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코로나 전쟁에 투입해야 할 것이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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