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 기자의 풀카운트>인생 9회말엔 '글러브 마스터'로 뜁니다

정세영 기자 2020. 12. 3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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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상이 지난 23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 글러브 매장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글러브를 펼친 채 미소를 짓고 있다. 정세영 기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한 한반도 글러브. 윤희상이 디자인했다.

■ 前 SK투수 윤희상의 변신

손재주 뛰어나 별명 ‘윤가이버’

17년 현역 마치고 매장 차려

선수·동호인용 맞춤 글러브 제작

김광현 한반도 글러브 만들기도

SK, 선수단용 ‘윤희상표’ 주문

SK 마운드를 지켰던 윤희상(35)이 글러브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윤희상은 지난 10월 30일 17년간의 현역 생활을 정리하고 은퇴했다. 그러나 야구와의 인연을 끊을 순 없었고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글러브 매장을 오픈했다. 지난 23일 매장에서 만난 윤희상은 “친구, 선후배들이 ‘딱 어울린다’는 덕담을 건넨다”면서 “글러브를 디자인하고, 제작 과정에 참가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윤희상은 손재주가 뛰어나 ‘윤가이버’로 불린다. 도구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그림 실력도 남다르다.

현역 시절엔 동료의 캐리커처를 그려 라커룸 게시판에 걸어놓곤 했다. 글러브를 다루는 솜씨는 으뜸. 동료들의 글러브를 쓰기 편하게 길들이는 ‘서비스’를 제공했고, ‘주문’은 밀려들었다. 그래서 ‘글러브 마스터’로 불린다. 윤희상은 자신이 지닌 장점을 살려 제2의 인생에 뛰어들었다.

윤희상은 애초 글러브 제작까지 염두에 뒀다. 그러나 글러브 생산은 설비 등을 갖춰야 하기에 만만치 않은 투자가 따라야 한다. 그리고 글러브 ‘장인’들을 따라가려면 시간, 세월이 필요했다. 윤희상은 “친한 제작업체에 ‘1년 동안 잡일을 하면서라도 글러브 제작을 배우겠다’고 부탁했는데, 그곳 사장께서 ‘제작은 전문 기술자에게 맡기고, 당신은 글러브를 쓰는 선수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해주셨다”고 설명했다.

윤희상의 글러브 디자인은 선수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다. ‘아이언맨’은 윤희상이 가장 아끼는 디자인. SK 투수 후배 박민호(28)가 요청해 만든 ‘작품’이고 재봉틀이 아니라 바느질로 꼼꼼하게 부착했다. 물론 박민호가 가장 아끼는 야구용품이다.

올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안착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 김광현(32)은 윤희상이 디자인한 글러브와 함께 데뷔전을 치렀다. 김광현은 한반도가 그려진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씩씩하게 던졌다. 윤희상은 “(김)광현이가 ‘형이 만든 글러브는 믿고 쓴다’고 말하기에 너무 고마웠다”면서 “내가 디자인하고 길들인 글러브를 가지고 후배들이 좋은 활약을 펼칠 때마다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귀띔했다.

SK 구단은 내년 모든 선수에게 ‘윤희상표’ 글러브를 지급하기로 했다. 옛 동료들의 장단점을 훤히 꿰고 있는 윤희상은 선수들의 요구에 맞춰 자신의 노하우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윤희상은 “은퇴하기 전까지 SK 선수들의 글러브 자료를 틈틈이 모아뒀다”면서 “물론 선수들이 원하는 스타일도 반영해 개인별 맞춤형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희상은 “1군 선수들은 대개 협찬을 받지만, 박봉인 2군 선수들은 글러브 등 용품을 구입해야 하기에 부담이 만만찮다”면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사업에 뛰어들었으니 이젠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고객층도 넓어졌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물론 아마추어, 그리고 동호인 등 일반인도 손님이다. 윤희상은 “내 손을 거친 글러브를 사용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면 내 브랜드 파워는 커질 것”이라면서 “아울러 아마추어, 동호인들에게도 질 좋고 마음에 쏙 드는 글러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윤희상은 2004년 1군에 데뷔, 올해까지 216경기에 등판했고 42승 44패 1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4.82를 남겼다. 1군 데뷔 후 부상과 수술, 군 복무 등으로 이름을 알리지 못하다가 2012년 10승 9패와 평균자책점 3.36을 올리며 선발투수로 자리 잡았고 2018년 불펜으로 보직을 바꿨다.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SK맨’.

윤희상은 “몇 년 전부터 ‘이젠 안 되겠구나’ ‘기량이 좋은 후배가 많아 경쟁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면서 “SK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고, 많은 분의 도움과 관심을 받아 행복했다”고 말했다. 윤희상은 “은퇴했지만, 글러브 매장을 운영하고 유소년 야구 클리닉에서 지도하는 등 야구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것”이라면서 “야구는 여전히 내겐 고맙고 소중한 존재”라고 덧붙였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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