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우 "40대 되니 비워야 채울수 있다는 깨달음 얻었죠"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2020. 12. 3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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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웃사촌'서 정치인 사찰하는 도청팀 팀장 대권 역
카카오TV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 내년 방영 예정
배우 정우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30대 때는 정말 뜨거웠고 직진만 하고 싶고 위로 솟아오르고 싶었어요. 이제는 조금 비워내고 다른 것들을 채우고 싶습니다."

독립영화 '바람'으로 충무루에 파란을 일으켰던 배우 정우를 시청자 누구라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후 그가 유사한 작품 선택을 하리라 예상했던 건 꽤 큰 오판이었다.

김현석 감독의 '쎄시봉'(2015)에서 젊은 오근태 역을 맡아 안타깝게 첫사랑(한효주)을 떠나 보내며 심금을 울리더니, 곧 이어 선보인 '히말라야'(2015/이석훈 감독)에서는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박무택 역을 맡아 다시 한 번 목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게 만들었다.

영화 '재심'(2017/김태윤 감독)에서는 10년동안 살인자로 살아온 청년의 진실을 함께 찾아나가는 변호사 역을 맡아 강하늘과의 찰떡 호흡을 펼치며 법정 드라마의 또 다른 모범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故 김주혁과 함께 했던 영화 '흥부:글로 세상을 바꾼 자'(2018/조근현 감독)에서 조선 최고 천재 작가 흥부 역을 맡아 안정감 넘치는 사극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달 개봉한 영화 '이웃사촌'(이환경 감독)으로 2년 만에 관객과 만났다. 정우의 필모그래피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응답하라 1994' 이후 시청률이 보장된 드라마에 단 한 편도 출연한 적이 없다는 사실과 출연 영화들의 감독이 단 한 명도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출연했던 작품의 감독이나 제작자와 다시 한 번 연을 맺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꽤 독특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출연작들은 감독의 성향도, 장르도, 스토리도 전혀 다른데 유독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다름 아닌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유난히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점이라고 할까.

눈 딱 감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속물 근성을 지니고 개인의 소박한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려고 하다가도 자기보다 딱한 사정의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세력과 마주했을 때 발끈하며 바른 방향으로 내달려 가는 것이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의 공통점이다. '이웃사촌'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이웃사촌'은 좌천 위기의 도청팀이 자택 격리된 정치인 의식(오달수) 가족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오게 되어 낮이고 밤이고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제가 연기한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정의감이 넘치는 인물이라는 분석도 일면 맞는 말씀 같아요. 제가 힘이 없는 소시민이 뭔가 도의적 행동을 하고 그것으로 인해 변화를 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꼭 정치적 소재나 의미있는 소재에 대한 관심보다는 힘은 없지만 사회 정의를 택하는 소시민에 끌렸던 것 같아요. 이야기의 힘에 끌려 택한 작품들도 다수 있어요. '이웃사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과 따뜻한 이해, 그리고 도덕적 도의 이런 것에 애정이 갔어요. 냉철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대권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죠."

정우가 연기한 대권은 자택격리된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청해야 하는 도청팀의 팀장이다. 야당의 대선 주자 물망에 올라 있는 의식의 약점을 잡아야 하지만 어리바리한 도청팀 직원들은 도통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동생 때문에 상사인 안정부 기조실장인 김실장(김희원)의 눈 밖에 나게된 정우는 조작을 해서라도 의식의 정치 생명을 끊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지만 연기로 표현을 할 때는 베이스에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테크닉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죠. 관객들이 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하죠. 이번 작품도 장면마다 그런 진정성을 전달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었어요. 한 장면 찍을 때마다 허들을 넘는 느낌이었죠. 대권이가 도청팀이다 보니 말이 아닌 시선 처리나 눈빛의 미세한 떨림 등으로 호흡을 표현해야 했고요. 냉정해 보이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던 사람에서 점점 이웃에 동화되어 가는 지점을 찾아내는 게 숙제였어요."

'이웃사촌'의 촬영 이후 김대명, 박병은과 함께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김민수 감독)와 김갑수, 최무성과 함께 '뜨거운 피'(천명관 감독)를 연달아 촬영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배급 시장 등의 상황과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 본의 아니게 대중에게 얼굴을 비추는 시간에 공백이 있었다.

"개봉 시기는 제작진 쪽에서 여러 상황을 보며 정하시는 것이기에 배우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편이죠. 본의는 아니었지만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그 시간을 지혜롭게 쓸려고 노력했어요.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운동을 하고 책도 보고 시나리오도 보내면서 보냈어요. 어린 시절에도 부모님께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가족과 함꼐 하면서 많은 에너지와 영감을 얻습니다. 선배님들이 '남자 배우는 마흔살부터가 진짜야'라고 이야기해 주시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조금 알 것 같아요. 연기는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오기도 하잖아요. 아내(김유미)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가족에게 가장 큰 영감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딸 아이는 아내와 저를 딱 반반 닮았어요."(웃음)

'응답하라 1994'외에도 그의 고교 시절을 그대로 그린 자전적 영화 '바람'(이성한 감독)은 정우를 충무로의 떠오르는 신예로 부상시키기도 했다. 이후 작품들에서 흥행의 부침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작품들의 평가나 배우 정우를 향한 시선과 기대는 늘 호의적이었다. 동년배 배우들 중 외모로서의 장점이나 이성에게 어필하는 매력으로 부각이 된 쪽이기보다 매우 드물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감정을 흔들 수 있는 연기력의 소유자였던 것이 크게 한 몫 했다. 하지만 지난 행보를 돌아보는 그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했다.

"'바람' 이후의 시기를 생각해보면 연기에 대한 욕심을 많이 부렸던 것 같아요. 그 이외의 것을 잘 챙기지 못했어요. 연기를 할 때 너무 고통스럽게 접근했어요. 한 장면, 한 장면에 매번 고통스럽게 연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원초적이고 투박한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있어요. 그동안 정말 이기적으로 연기했어요. 내내 제 연기만 생각하며 촬영장을 다녔죠. 잠도 잘 안와요. 잘 먹지도 못하고요. 제 심장에 어떤 실오라기 하나가 붙어 다니는 느낌이랄까. 제가 좋아하는 꿈이어서 배우라는 직업을 택했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제가 이렇다면 남들도 저를 바라보며 힘이 들텐데 말이에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연기해야 겠다는 결심이 선거죠."

오연서와 함께 주연을 맡은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X'의 촬영 탓에 밤새 딱 1시간을 취침한 후 인터뷰 현장으로 왔다는 정우는 답변 한 마디에도 성의를 다 하려는 태도를 내내 견지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예쁜 딸 아이의 아빠가 됐고 작품에서도 타이틀 롤을 맡아 자신의 연기뿐만이 아닌 영화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과 현장의 분위기까지 좌우해야 하는 큰 짐을 짊어진 그는 마음도 생각도 더 넓어져 있는 듯 보였다.

"제가 40대가 됐다는 게 전혀 믿어지지 않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며 지낸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제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채워나가게 되네요. '내가 나이를 조금씩 먹나' 생각하게 되요. 기존에는 뜨거웠고 앞으로 직진만 해야 할 것 같고 위로 솟아오르고 싶고 그랬어요. 반면 지금은 조금 비워내고 싶어 집니다. 다른 것들을 채우고 싶어요. 현장 경험이 이제 조금씩 쌓이다 보니 제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다고 할까요. 영화 '바람'과 '응답하라 1994'가 큰 사랑을 받다 보니 넘어야 할 산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지만 저로서는 이제 갓 마흔이 넘은 정우에게 대표작이 영화와 드라마에 각각 하나씩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연기하는데 늘 밑천이 되는 작품들이죠. 감사하고 귀한 작품들이에요. '히말라야', '재심', '쎄시봉', '흥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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