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차동엽 신부의 7가지 선물'을 읽으며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0. 12.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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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전도사'로 최선을 다한 고 차동엽 신부. /조선일보DB

어느덧 올해도 거의 저물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지요. 올해 마지막 편지는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차동엽 신부의 7가지 선물’(위즈앤비즈)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1년 전 돌아가신 차동엽(1958~2019) 신부님은 우리 천주교계에서 특별한 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신부님이라면 ‘엄숙함’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차 신부님은 달랐습니다. 기름 발라 ‘올백’으로 머리카락을 빗어넘긴 외모부터 달랐죠. 게다가 입만 열면 ‘뻥친다’ ‘꼬드긴다’ 등의 세속적(?) 표현을 서슴없이 구사하셨으니 ‘별종 신부님’처럼 보였죠. 본인 스스로도 ‘약장수’라는 표현을 전혀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셨어요. IMF 사태 때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쓴 저서 ‘무지개원리’가 수백만권 팔린 밀리언셀러 저자이기도 하셨죠. 성당의 제대뿐 아니라 TV의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엄숙함’의 둑을 과감히 무너뜨린 분이었죠. 또 말씀을 얼마나 잘 하시는지 연간 강연이 600회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의 차 신부님 사무실 벽 달력엔 강연 일정이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했지요. 초인적인 일정에 혀를 내두른 기억이 생생합니다. 신부님은 그 빡빡한 강연 때마다 항상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차동엽 신부의 7가지 선물' 표지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차동엽 신부의 겉모습입니다. 연예인 뺨칠 정도의 대중성이지요. 저는 생전에 신부님을 몇차례 만났지만 한번도 심각한 표정의 신부님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쾌활하고 자신감 넘쳤으며 ‘누구 맘대로 내가 절망해?’라고 자신만만해 하셨지요. 물론 신부님이 희망을 이야기하기 전엔 항상 전제가 있었습니다. 본인이 어린시절엔 너무나 가난했다고요. 관악산 자락 산동네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연탄과 쌀 배달을 했다고요. 돈이 없어 인문계 고교가 아닌 공고(工高)로 진학해야 했다고요. 그런데 신부님 생전엔 그 고생담을 들으면서도 ‘희망’을 강조하기 위한 전주곡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의 1주기(지난 11월 12일)를 앞두고 김상인 신부님이 엮은 이 책 ‘차동엽 신부의 7가지 선물’(이하 선물)을 읽다가 울컥했습니다. 김상인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부터 차 신부님을 멘토로 모셨고, 현재는 미래사목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책은 생전의 차 신부님이 남긴 글을 교직(交織)해 7가지 키워드로 그의 일생을 재조명합니다. 7가지 선물(주제)은 ‘긍정이 낳은 힘’ ‘믿는 대로’ ‘지혜의 맥’ ‘귀한 말씨’ ‘희망의 샘’ ‘감사의 기적’ ‘행복의 숨결’입니다. 긍정, 희망, 감사 등 생전의 차 신부님이 쓰던 말투가 그대로 묻어나지요?

2007년 KBS '여성공감'에 출연해 '무지개 원리'를 강연하는 차동엽 신부. 차 신부는 엄숙함을 벗어던지고 방송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래사목연구소

그런데 이 소제목들은 어쩌면 당의정(糖衣錠)입니다. 겉은 달콤하지만 속에는 입에 쓴 이야기, 즉 영성이 담겨있습니다. 제일 첫 장 ‘긍정이 낳은 힘’은 차 신부님의 고통으로 시작합니다. 차 신부님은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시절의 가난 때문이었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연탄과 쌀을 지게에 지고 산동네 비탈길을 오르내리면서 허리가 휘었고, 그 여파가 간(肝)으로 이어져 간염과 간경화로 악화돼 결국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됐지요. 느릿느릿한 ‘황소걸음’ 역시 연탄과 쌀의 무게 때문에 빨리 걸을 수 없다보니 저절로 몸에 밴 것이랍니다. 게다가 책에는 차 신부님이 오스트리아 유학 중 대형 교통사고로 죽음 문턱까지 갔던 사연도 있습니다. 당시 현지 신문에 사진과 기사가 실릴 정도로 큰 사고였지요. 그런데 차 신부님은 사고가 나던 그 찰나 “난 할 일이 있는데”라고 생각했답니다.

차동엽 신부는 1990년 오스트리아 유학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는 차가 구르는 중에도 '어, 난 할 일이 있는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진은 당시 현지 신문에 실린 사고 기사. /미래사목연구소

그 할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아파해주는 것이 아니었까 생각합니다. 차 신부님이 위대한 점은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것이겠지요. 신부님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최선의 선택은 고통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어려운 말이지요. 그런데 신부님의 다른 글을 읽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신부님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고통을 호소했답니다. 그럴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신부님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이 있어도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고통’의 문제가 바로 그렇다.” “사람들이 나에게 고통의 의미를 물어올 때, 나는 심한 무력감에 휘둘리곤 한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픔이 느껴져 와서!” “누군가가 고통의 문제에 답을 청해 올 때, 정답을 말해 준다고 고통이 없어지진 않는다. 희한하게도 고통은 멋지게 설명될 때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할 때 절감되는 것이다. 사랑이 고통을 분담해주기 때문이리라.”

그는 소설가 최인호의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지금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누군가가 겪고 있는 고통 덕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 역시 지구 저편 누군가의 통절한 아픔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행복 총량의 법칙’인 셈이지요. 최인호의 이 문장에 대해 차 신부님은 이런 해석을 붙였죠.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은 내가 동의하건 말건 이미 지구상 어느 누군가에게 선익(善益)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너의 고통이 우리의 희망이다.” 사실 차 신부님은 자신의 고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가셨지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 말입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드는 생각은 ‘차 신부님은 행복한 분이었구나’라는 것입니다. 생전에 남긴 글을 이렇게 훌륭하게 편집해서 멋진 책을 만들어주는 후배가 있으니 말이죠. 김상인 신부님은 이 책을 준비하면서 꿈 속에서 차 신부님을 몇차례 만났다고 합니다. 김 신부님은 프롤로그에서 “차 신부는 아직 우리에게 못다 한 말들이 많다. 그는 평생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제였고, 힘든 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그들 곁을 동행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길 원하지 않을까”라고 적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선물’이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2020년은 모두가 힘들었습니다.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 하루 남은 2020년을 마무리하면서 고통 속에 평생을 살면서도 희망을 노래했던 차동엽 신부님이 남긴 선물을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독자 여러분, 올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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