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타인능해와 생존장치

남상훈 2020. 12. 2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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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볼 수 있는 풍경 하나가 사라졌다.

코로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우리에게서 앗아가거나 바꾸어놓았다.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이 위기에서 우리를 구한다는 사실을 그간의 미립으로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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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볼 수 있는 풍경 하나가 사라졌다. 코로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우리에게서 앗아가거나 바꾸어놓았다. 그래도 그것만큼은 계속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바로 연말연시를 맞아 행해지던 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이 그것이다. 이때가 되면 방송사에서는 불우이웃돕기라는 명목으로 모금생방송을 벌이거나 정치인들은 상대진영을 향해 날 선 비수를 날리다가도 이맘때쯤이면 경쟁적으로 양로원이나 쪽방촌, 혹은 고아원 같은 시설들을 방문해 한 장의 사진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남겼다. 보여주기 식이든, 진정에서 우러나왔든 간에 그래도 그 장면들은 보는 이들에게 훈훈함을 안겨주었다. 한데 그 풍경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외출을 삼가라는 권고와 강요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점점 멀어지더니 원심력도 그만큼 약해져버렸다.

재택근무에 혼자 밥을 먹고, 가급적 집에 머물라는 호소에 혼자 노는 법을 궁리하다 보니, 제법 혼자 살아가는 편안함과 재미도 알게 된 것이다. 이러다 인정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사뭇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아직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마음에 온기를 지펴주는 훈훈한 소식들이 들려온다. 비록 올해로 그 끝을 알렸지만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는 어김없이 모갯돈을 희사했고, 간간이 연예인들의 기부소식도 날아든다. 코로나가 기세등등 점령군처럼 세계를 향해 전진하던 연초만 해도 우리는 한마음으로 나눔과 연대, 배려를 강조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이 위기에서 우리를 구한다는 사실을 그간의 미립으로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한데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그 바이러스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갖고 있던 그 나눔의 지혜와 유전자마저 손상시키는 듯하다. 폐업하는 가게가 줄을 잇고, 하루하루가 힘든 가구가 늘어나는데 또 한쪽에서는 흔전만전 소비하는 사람들로 방역마저 위태로울 지경이다.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수입을 자신을 위해 쓰는 일은 정당한 일이지만 그래도 한번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면 좋지 않을까. 코로나 장발장의 딱한 사연이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다. 현대인의 삶은 서로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서 타인의 불행은 타인의 불행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타인을 배려하는 일, 그 배려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늦었지만 구례 운조루의 ‘타인능해’ 뒤주처럼 배고픈 이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음식창고와 생존장치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이웃 가운데는 직장을 잃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조금씩 자신의 몫을 덜어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며 후손에 남길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이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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