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1년동안 방역 동참했는데, 이젠 한계예요"
[앵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놨는지 돌아보는 두번 째 시간입니다.
지난 1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많은 시민들이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방역에 참여해왔죠.
이젠 한계에 부닥쳐 일상으로의 복귀가 간절한 사람들을 김혜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매주 방역을 진행합니다.
하지만 객석은 텅 비었습니다.
감염 확산이 계속되면서 공연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정휘경/자유극장 기술감독 : "12월에 들어서는 (코로나19)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가지고 1월달에도 준비되었던 공연들이 지금 취소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공연을 해도 좌석 간 거리두기를 지키다보니 받을 수 있는 관객 수는 절반도 안됩니다.
[정휘경/자유극장 기술감독 : "지원 없이 저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장기적인 안목으로 어려운 시기를 같이 해결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 개씩 묶으면 몇 묶음이 돼요?"]
14년간 학원을 운영해 온 김희수 씨도 이제는 한계라고 말합니다.
비대면 수업이 길어지면서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김희수/학원 원장 : "희망을 가지고 버티기보다는, 지금 이제 마지막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최소한의 어떤 마지노선을 걷고 있다고 (봅니다)."]
집합이 금지된 헬스장은 하루 하루 빚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전건후/헬스장 관장 : "무작정 문만 닫으라고 하니까, 시간을 도둑 맞았다는 느낌도 있고요. 지금 이걸 통해서 부채가 엄청 쌓였어요."]
단계가 내려가 다시 문을 연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더 큰 걱정입니다.
[전건후/헬스장 관장 : "이 쌓여있는 부채에 대해서 어떻게 부담을 하고, 감당을 할지 그게 좀 막막하죠."]
수능이 끝나고 가장 붐빌 시기지만 PC방은 텅 비었습니다.
사장 최완순 씨는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며 폐업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최완순/PC방 사장 : "앞으로 좋아질거라는 기대심리로 해가지고, 계속 빚을 내서라도 지금까지는, 버텨온건데. 버티다, 버티다, 이제는 버틸 기력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철거비용이 부담돼 폐업도 쉽지 않고, 문을 닫더라도 대안이 없습니다.
[최완순/PC방 사장 : "이걸 폐업하고 나서 내가 뭘 해야될지. 할 게 없잖아요. 그러면 빚을 뭘로 갚을 거예요."]
포장과 배달 주문만 가능한 카페도 문을 여는 것이 오히려 손햅니다.
[전경희/카페 사장 : "이제 테이크아웃을 기점으로 (매출이) 완전히 뚝 떨어지죠. 아르바이트생들은 일단 다 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왜냐하면 문 여는 것 자체가 손해인 상황이거든요."]
힘든 일년을 보낸 이들이 지금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다시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최완순/PC방 사장 : "새해에는 당연히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이제 끊기고..."]
[전건후/헬스장 관장 : "마스크를 벗고 다같이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그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KBS 뉴스 김혜주입니다.
촬영기자:김제원 윤희진 서다은/영상편집: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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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주 기자 (kh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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