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진실 틀어막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지난 1일 ‘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를 결정하는 독일 베를린 미테구 의회가 열렸을 때 그 앞에서 ‘소녀상 영구설치 허가’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 중 ‘우익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이라는 모임의 피켓이 눈에 띄었다. 이 단체는 3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된 이후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지금은 독일 69개 도시에 지역 조직이 있단다. 1일 시위에도 참석한 이 모임 회원 레나테 크리스티안스(65)를 지난 10일 화상으로 만났다.
- ‘우익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은 어떤 단체인가.
“201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됐다. 당시 극우 포퓰리즘 당이 집권하자 전쟁과 전후 시대를 겪었던 나이 든 여성들이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 후 독일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현재 독일에만 69개 도시에 이 단체 모임이 있다. 베를린은 재작년 6월 설립했는데 민주적 기본가치 지향과 다양성 존중, 상생과 환경에 대한 책임 등을 추구한다. 베를린 회원은 200여명이며 열심히 활동하는 분은 50~60명이다.”
-어떤 활동을?
“한 달에 한 번 전체 정기모임을 하고 친교도 나눈다. 나는 베를린 북구 지역이다. 주제별 모임은 교육, 연극, 역사, 여성주의, 환경분과로 나눠 한다. 가령 환경분과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가로수 보호나, 청소년들의 기후변화 대처 운동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 등에 참여한다. 교육분과는 극우주의나 인종차별과 나치 문제를 집중해 다루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대 증언 강연도 한다. 여성주의 분과에서는 남·여 평등 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한다. 내 관심 분야는 난민과 통합 문제이다. 이와 관련한 시위에서 세 차례 정도 발언도 했다. 나는 지금 ‘행동’ 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 어떤 회원이 나한테 편지를 써서 소녀상 문제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문의했다. 그럴 때 나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짜내어 지원하고 그 활동을 함께한다. 단체의 모든 활동이 행동 분과를 거친다.”
-과거 어떤 일을 했나.
“간호사였다. 의사와 결혼해 남편이 개인병원을 할 때 아이를 키우면서 그 병원에서 같이 일했다. 이혼해 50살에 보건의료정보관리사라는 직업으로 새 출발 해 은퇴할 때까지 일했다. 아이들을 키우던 30대쯤 교회소속 평화그룹에서 활동했다. 그때 정치적 관심을 가지고 당시 사회이슈였던 반전, 평화 시위에 참여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86년)이 일어나면서 반핵 운동에 참여했고, 몇 년간 이 활동을 했다.”
-‘우익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에는 어떻게 가입했나.
“이혼하고 새로운 직업 교육을 받으며 새 일을 시작할 때는 정치 문제로 활동할 시간이 없었다. 4년 전에 은퇴하고 베를린으로 왔는데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대규모 반전 평화시위가 있을 때마다 참여했다. 유럽의 가치를 지키자는 ‘유럽의 맥박’이나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 나갈 때마다 ‘우익에 반대하는 할머니들’ 피켓이 눈에 띄었다. 그때 관심이 생겨 참여했다.”
1일 코리아협의회 등 재독 한인들과 미테구 소녀상 영구설치 연대 시위 “여성대상 전쟁범죄는 보편적 문제 소녀상은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 줘”
3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 ‘극우구호 스티커’ 치우는 활동도
-소녀상 활동을 하며 어떤 생각을?
“여성대상의 전쟁범죄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에서 여성이 물건처럼 다루어지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우리 단체는 더는 이런 비인권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런 역사가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거다. 우리는 이 위안부 운동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이 역사는 동아시아의 특수한 역사이지만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나는 소녀상 지킴이 시위를 하면서 인터넷에서 일본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역사자료를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소녀상을 통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이 문제를 고민했다.
예컨대 어머니한테 젊은 시절 동프로이센에서 독일로 피난 오던 중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간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고, 어머니가 말해주지도 않았다. 신문에서 성폭력 범죄가 보도될 때도 남의 일처럼 여겼다. 소녀상 문제로 활동하고 공부하면서 이 문제가 내 문제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소녀상으로 더욱 큰 맥락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예전에 생각도 안 해본 문제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 평화의 소녀상에 감사한다.”
-활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열린 자유로운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들이 매년 한 차례 하는 대규모 연대 시위가 드레스덴에서 작년 8월에 있었다. 그때 전국에서 우리 단체 회원 수천 명이 모여 우리가 얼마나 큰 규모의 단체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함부르크, 하노버 등 독일 각 지역에서 온 우리 단체 현수막을 보고 큰 감동을 하였다. 이렇게 많은 여성이 같은 운동을 하다니, 정말 멋졌다.”
-단체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변한 게 있다면?
“어제(9일)가 내 65번째 생일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보았다. 홈페이지에 그간 내 활동을 찍은 비디오를 올려놓았다. 그걸 보면서 내가 여기서 더 큰 강인함을 얻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진지해졌다. 활동하면서 매우 기쁘고 재미도 있다.”
-활동 계획은?
“내년 (독일)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후보들에게 던질 질문지를 작성하고 있다. 어떤 당이 우리 요구에 맞는 정책을 내놓을지 잘 살펴 후보들을 긴장시킬 것이다. 극우 반대 활동도 계속하고 내년 1월에는 위안부 관련 시위도 참여한다. 가로등 기둥에 붙은 극우 구호가 담긴 스티커를 함께 떼어내는 ‘할머니들이 정리한다’ 활동도 계속한다. 쓰레기를 치우며 행인들과 이야기를 계속 나눌 것이다.”
-활동 중 어려운 점은?
“난민 문제가 그렇다. 큰불로 난민 캠프가 타버린 그리스 모리아를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다. 항의 편지를 쓰고 시위를 하러 거리에 수없이 나가도 정치적으로 바뀌는 게 없다. 정치인들은 우리가 거리에 나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 같지 않다. 이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서로 격려하며 흔들어 깨워 그냥 꾸준히 한다. 이 과정이 쉽지 않고 때로 슬프기도 하다.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내용의 연설을 어떤 젊은 남성이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그래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열심히 참여하고 활동하는 젊은이들의 실망은 더욱 클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이 젊은이들은 언젠가 미쳐서 극단적이 될 것이다. 아니면 아예 등을 돌릴 것이다. 정치가 변하지 않는 게 정말 아쉽다.”
-회원 중 할아버지는?
“남자 회원들도 있다. 많지는 않다. 왜 우리 나잇대의 많은 남성들이 우리 일에 함께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아마 활동을 하기에 좀 지쳐있을 것도 같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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