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창작 윤리 돌아보게 한 '문학상 잡음'..잇단 해외 수상은 희소식 [2020문학]

선명수 기자 2020. 12. 2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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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0년은 문단과 창작의 윤리에 대한 숙제를 남긴 한 해였다. 지난 1월 이상문학상의 저작권 양도조항 논란으로 소설가 윤이형이 절필을 선언했다(위 사진). 7월엔 소설가 김봉곤의 ‘그런 생활’ 등이 사생활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가운데). ‘매절 계약’으로 출판사와 소송전이 이어졌던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대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문단의 윤리, 창작의 윤리에 대한 질문과 숙제를 남긴 한 해였다. 올해 초,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이상문학상이 일으킨 파장은 꽤 길었다. 이상문학상은 수상작의 저작권을 3년 동안 출판사에 양도하고 작가가 자신의 소설집을 낼 때도 수상작을 표제작으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등의 독소조항으로 논란을 빚었다. 김금희 소설가의 수상 거부 선언을 시작으로 최은영·이기호 작가의 수상 거부가 잇따랐고, 동료 작가들의 지지와 연대 표명도 이어졌다. 출판사가 사과를 미루는 사이 지난해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소설가가 상의 불공정성을 비판하며 절필을 선언했다.

동료 작가들이 문학사상의 원고 청탁 등 업무 보이콧 의사를 잇따라 표명하자 문학사상사는 결국 올해 수상자 발표를 취소했다. 출판사의 사과 발표와 저작권 양도 등 독소조항 수정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문학상의 공정성과 상업주의에 대한 숙제가 남았다.

이상문학상, 저작권 문제 불거져
젊은작가상 수상한 김봉곤 작품은
사적 대화 무단 전제로 판매 중단
아동문학 등 세계적 권위 상 수상
여성 작가들 활약 두드러진 한 해

지난 7월엔 창작 윤리 문제가 불거졌다. 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봉곤의 단편소설 ‘그런 생활’에 지인과의 사적 대화가 무단으로 전제됐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면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오토 픽션’을 주로 써온 김봉곤 작가는 성소수자의 삶과 사랑을 그린 퀴어 소설로 문단의 호평을 받아왔지만,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여과없이 소설에 등장시키며 논란이 됐다. 단편 ‘그런 생활’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온 지 일주일 만에 그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에서도 지인이 보낸 메시지를 그대로 옮겨 썼다는 또 다른 피해자의 폭로가 나왔다.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는 이 소설로 성정체성이 원치 않게 공개되는 아우팅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결국 김 작가가 사과하며 젊은작가상을 반납했고, 그의 책을 출간한 창비와 문학동네가 책을 회수하고 판매를 중단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출판사와 작가의 안일한 초기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오토 픽션의 사생활 침해를 넘어 한국문학의 창작 윤리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이상문학상과 김봉곤 논란 모두 문단 내 영향력이 큰 출판사, 문단의 해묵은 관행에 젊은 작가들과 독자들이 적극 문제를 제기하고 그 권위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2020년은 지난해에 이어 외국에서 한국문학의 힘과 가능성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동문학에선 백희나 작가가 최고 권위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했고, 김금숙 작가는 ‘만화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하비상을 받았다. 김이듬 시인은 <히스테리아>로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 동시 수상했다. 하성란 작가의 소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는 미국 서평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뽑은 올해의 책 10권에 선정됐다. 교포 작가인 유미리와 최돈미는 미국 최고 권위의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안았다.

국내에서도 여성 작가들 활약이 두드러졌다. 권여선·김숨·정세랑·김금희·황정은 등이 잇따라 신작을 발표하며 한국소설의 약진을 이끌었다. 주요 문학상도 여성 작가들이 휩쓸었다. 단일한 이름으로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여성 서사가 쓰인 현장이 2020년 한국문학이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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