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사건 피해자, 신변노출 '2차 피해'..돌아갈 일상이 사라졌다"

김미향 2020. 12. 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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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사망과 성추행 논란]"이름뿐 아니라 필체도 피해자의 신변 정보"
현행 법 "누구든 피해자 특정하는 정보 공개 불가"
28일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이 사건은 수사할 때도 가명으로 진행하고 있다. 계속되는 ‘2차 가해’로 주변에서도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피해자는 앞으로 돌아갈 일상이 없어졌다. 이제 누가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문제제기 할 수 있겠나.”

“피해자의 실명뿐 아니라 필체도 피해자에 대한 정보의 일종으로 자필 편지 공개 역시 피해자의 신변정보를 유통한 2차 피해다. 여러가지 관련 법률과 제도를 만들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다 무슨 소용인가.”

28일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의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들이 에스엔에스(SNS)상에서 노출되는 등 2차 피해가 이어지자, 피해자 지원 단체인 공동행동은 서울시장 권한대행, 여성가족부 장관,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피해자 인권보장을 위한 긴급조치 촉구 서한을 제출했다.

앞서, 피해자 쪽은 피해자의 실명을 에스엔에스에 노출한 김민웅 교수와 피해자의 자필 편지를 게재한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을 성폭력특례법 24조 위반으로 지난 24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한 상태다.

이날 공동행동은 기자회견에서 “여러 차례 피해 직원 보호 역할을 천명한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피해자에 대한 실명과 정보를 유출·유포하는 행위자를 즉각 고발하고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이들은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는 2차 피해 행위자에 대한 구속수사를, 여성가족부에는 2차 피해 현장점검을 요구했다.

지난 12월10일 서울시는 ‘서울시 성차별성희롱 근절 특별대책위원회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2차 가해 행위에 대한 명확한 징계규정을 신설해 행위자를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서울시는 2차 가해 관련 모니터링단을 운영해 온라인 공간에 피해자 비난 글, 행위자 옹호 글 등이 게시될 경우 제재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현행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2차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조치를 취하라고 정하고 있다.

이 사건뿐 아니라 성희롱·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특정해 비난하는 ‘2차 피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스엔에스, 유튜브 등 뉴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에 의한 2차 가해가 늘면서 성폭력처벌법 24조 2항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처벌법 24조 1항은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거나 이에 관여한 공무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사람이 피해자에 관한 정보를 누설하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같은 법 2항은 누구든지 피해자를 특정해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인쇄물이나 방송, 정보통신망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두 조항을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장임다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기획팀장은 “기존에는 주로 수사과정에서 수사 관계자들에 의해 피해자 정보가 유출되는 문제가 발생해 성폭력처벌법 24조 1항을 두고 관련 직책자들을 규율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장 사건처럼 대중에 알려진 사안들이 많아 누구든지 피해자를 특정하는 정보를 공개하면 안 되는 2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 팀장은 “꼭 성명이 아니라도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 예를 들면 비서라는 업무 역할 등이 들어있다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6월 발간한 ‘공공기관의 장 등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을 보면, ‘2차 피해’란 1차 피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불쾌감과 불이익을 주는 모든 행위로서 공동체 내 악의적 소문 유포, 조직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가해자를 감싸거나 사건 은폐를 시도하는 행위 등도 포함된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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