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뀐 지 언제인데..실손보험 청구 '종이 서류' 이젠 사라질까

임아영 기자 2020. 12. 2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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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보험업법 개정안' 발의..내년 관련 법안 통과 여부 주목

[경향신문]

연간 9000만건 종이문서로 청구
권익위 개선 권고 11년째 제자리

실손의료보험은 전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가입하고, 연간 청구 건수가 9000만건에 이를 정도로 대중화된 보험이다. 그러나 비대면·온라인 거래가 폭증하는 현실에도 가입자가 실손보험금을 타기 위해서는 진료비 영수증이나 진단서, 소견서 등을 종이 형태로 발급받아 팩스나 우편으로 보내거나 설계사를 통해 보험사에 보내야 한다.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종이 서류를 발급받은 후 사진을 찍어 앱에 올려야 한다.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2009년 국민권익위가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개선하라고 권고했지만,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는 여야 의원 모두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관련 법안 통과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도 실손보험 청구간소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청구간소화 방안이 시행되면 보험계약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기관이 관련 서류를 보험사에 직접 전산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다. 보험사와 의료기관 사이에 직접 정보를 연동시켜, 종이 서류가 오갈 일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 의료계 반대 속내는

간소화 방안 반대하는 의료계는
비중 높은 비급여 진료 데이터
심평원서 들여다볼까 우려하고
참여연대·보건의료노조 등은
질병정보 보험사 넘어갈까 걱정

의료계는 간소화방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실손보험은 보험사와 가입자 간 사적 계약인데, 의료기관이 청구를 대행하도록 하는 것이 부당한 의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계약은 가입자와 보험사가 맺더라도, 의료행위에 대한 계약이기 때문에 의료기관 역시 이해관계자로 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있다. 강성경 ‘소비자와함께’ 사무총장은 “의료서비스 결과에 대한 증빙서류를 제공해야 하므로 의료기관 역시 당사자인데 기록 전송의 책임만 부여받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우려하는 속내는 비급여 진료에 대한 데이터 때문이다. 실손보험이 주로 비급여 진료를 보장하다 보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 정보를 들여다볼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는 이러한 반발을 고려해 법안에 심평원이 서류전송 외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하거나 보관할 수 없게 했다. 또 전송 업무와 관련해 의료계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내용도 추가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심평원이 비급여 데이터를 ‘경유’하는 것도 마뜩잖은 분위기다. 그 데이터가 ‘집적’될 수 있고, 언젠가 비급여 진료를 ‘통제’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강 총장은 “의사들이 임의로 결정하는 비급여 진료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 싫은 것”이라고 말했다.

■ 민감한 질병정보 괜찮을까

참여연대와 보건의료노조 등은 민감한 질병정보가 보험사에 넘어갈 수 있는 점을 우려한다. 보험회사가 관련 자료를 전산으로 축적하면 환자 보험금 지급 거절, 보험료 인상 용도로 쓰일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보험사에 정보 제공에 동의하는 가입자들이 서류를 떼서 보험사에 제출하고 보험사는 그를 전자적으로 축적하고 있어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입자가 직접 제출하던 서류를 의료기관이 전송하게 되는 차이가 생기는 정도다. 오히려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조용운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설계사들에게 진단서를 맡기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20%가 넘는데 질병정보가 이런 방식으로 축적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2018년 기준으로 연간 9000만건에 이르는 서류가 종이 문서로 청구된다. 설계사가 대신 청구하는 비율은 23%, 가입자가 팩스나 우편으로 청구하는 비율은 37%다. 직접 방문하는 비율도 16%나 된다. 보험사 앱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또한 가입자가 종이 서류를 발급받아 사진으로 찍어 첨부하는 경우가 21%다.

■ 소비자 편익 우선돼야

보험업계에서도 처음부터 이 논의를 반겼던 것은 아니다. 2018년 기준으로 전체 미청구율이 15%인데 청구간소화가 이뤄지면 청구 비율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는 시스템 구축 비용을 내더라도 청구간소화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실손보험 청구량이 늘어나면서 보험사들로서도 업무량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점에까지 왔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관련 인원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고 보험금 청구 업무가 쏟아지면서 처리기간에 쫓겨 계산만 간신히 해서 주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보험사가 보험금 청구 관련 인력을 줄이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소비자 편익 관점서 접근해야”

보험업계는 민간보험인 실손보험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실손보험 가입자가 3800만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실손보험을 건강보험의 ‘보완재’로 보지 않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는 공·사보험 정책협의체를 열어 실손보험 손해율과 비급여 관리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실손보험이 급여 진료의 자기부담금을 보장하면서 건강보험의 재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데다, 비급여 진료로 실손보험 손해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 부처는 내년 보험업법, 건강보험법을 일부 개정하고 공동 시행령을 제정해 공·사보험 연계의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방안은 보험업계, 의료계의 입장보다 3800만명 소비자의 편익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자동차보험 청구 방식을 참고할 만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을 때 병원 전산시스템을 통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한다. 강 총장은 “절대다수 국민의 편익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이라며 “내년 국회에서는 심의를 서두르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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