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아이들' 찾아내는 교육복지사가 말하는 2020년, 콘택트가 중요한데..언택트 탓, 막막했다

김서영 기자 2020. 12. 2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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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옷차림·학용품·교우관계 등
학교생활 관찰 못해 업무 난항
가정방문 설득도 만만치 않아
갈 곳 없는 아이들 일탈 늘어
부모가 아이 관리 요청하기도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소속된 교육복지사 A씨의 휴대전화는 연말을 앞둔 요즘 부쩍 바쁘게 울리기 시작했다. 취약계층 학생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의뢰하는 담임교사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예전 같으면 1학기 말쯤 발견됐을 아이가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늘어난 올해에는 학년 말이 돼서야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복지사는 학교에 소속된 사회복지사로 교육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발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강원도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육복지사 B씨도 올 한 해를 돌이키며 “진로, 진학, 성적 위주였던 학교의 고민이 코로나19 이후에는 아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고 있는지 등 다시 의식주 걱정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 도움 필요한 아이들 찾기 어려워

교육복지사들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난항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교육복지사들은 일상적인 관찰을 통해 지원대상을 발굴하곤 했다. 날씨가 추워졌는데도 여름옷을 입고 다니거나, 학용품이나 옷가지가 남루하거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식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식의 접근이 어려워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초유의 원격수업이 시작되면서 학교는 개학이 다섯 차례 연기됐고, 등교수업이 이뤄진 이후에도 지역별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A씨는 “이런 상황을 감안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더욱 집중했지만, 아이들을 대면할 기회가 워낙 적어 파악 자체가 어렵다보니 2학기 말인 지금에야 담임교사들의 연락이 오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등교인원이 제한되고 쉬는 시간을 최소화한 단축수업이 실시되면서 아이들이 교육복지실을 먼저 찾아오는 일도 줄었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 소속 교육복지사 C씨는 “등교를 해도 아이들의 교실 밖 이동이 제한되다보니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교육복지실을 찾아와 보드게임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놀면서 살짝살짝 내비치는 속내를 듣고 문제를 파악했는데 이젠 따로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코로나19가 남긴 상처를 보다

그 결과 가정방문의 중요성이 커졌다. 서울의 한 중학교 소속 교육복지사 D씨는 경제적·정서적 어려움이 중첩돼 있거나 원격수업에 접속하지 않아 집중관리가 필요한 학생의 경우 가정으로 직접 찾아간다. 코로나19 탓에 집으로 찾아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 학부모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릴 때도 있지만, 대면해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D씨는 “온라인이나 전화로 상담하면 아이들이 ‘괜찮다’ ‘잘 지낸다’고 형식적인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식료품이나 의약품 꾸러미를 전달하러 간다는 등의 계기를 만들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찾아가려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복지사들은 이 과정에서 코로나19가 학생들에게 남긴 상처를 목격했다. B씨는 “학교가 문을 닫아 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이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불건전한 만남이나 일탈행동이 늘어났다”며 “학교 밖 아동보호기관에서 역으로 신고가 들어오는 건수도 많아졌고 부모가 먼저 ‘아이 관리 좀 해달라’고 전화하는 경우도 증가했다”고 전했다. 취약계층 가정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실직한 부모가 하루 종일 술을 마시거나, 아이가 다니는 학원 등록을 중단하는 일도 흔하다.

D씨는 최근 “자퇴하겠다”며 학교를 거부하는 학생을 돌려세웠다. 가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던 학생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학교에 와서 일상적으로 웃고 떠드는 시간이 없어진 것에 대한 고통이 생각보다 크더라”며 “이 학생도 온라인으로만 이야기하는 데서 오는 허탈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받아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 내년에도 코로나19가 계속되면

코로나19는 앞으로도 당분간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취약계층일수록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교육복지 수요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C씨는 “코로나19 이후 복지의 접근방법이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며 “원격수업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사례를 발굴하고 지원해 나갈지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 역시 “올해 겪었던 혼란을 반복하지 않도록 내년에는 지원 대상 학생들을 좀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무기력하게 있는 시기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에 배치된 교육복지사는 1664명에 불과하다. B씨는 “교육복지 사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무상지원을 받는 것에 내성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라며 “모든 학교에 교육복지사가 배치된다면 아이들을 더 촘촘하게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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