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 게임·졸라맨 이제 추억 속으로.."RIP, 플래시"[오지현의 하드캐리]

저에게 첫 게임은 ‘쥬니어네이버’였습니다. 방과 후 컴퓨터 앞으로 달려와 고기를 굽고(줌마’s 맛있게 냠냠), 슈에게 옷을 입혀주고(슈의 의상실), 만두를 빚곤(고향만두 만들기) 했죠. 동 세대 많은 게이머들의 추억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이런 ‘플래시 게임(Flash game)’이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지게 됐습니다. 어도비가 플래시 플레이어에 대한 공식적인 지원 종료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어도비 플래시는 1995년 개발돼 약 25년간 명맥을 이어온 소프트웨어 플랫폼입니다. 처음에는 웹 브라우저에서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기 위해 개발됐다가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인터넷 문화의 바탕이 됐습니다. 감자도리, 엽기토끼(마시마로), 졸라맨 같은 국산 플래시 애니메이션 다들 기억하시죠? 플래시라는 기술은 요즘 말로 하면 인터넷 ‘밈(meme·유행하는 콘텐츠 요소)’의 최대 확산지였던 셈입니다.

이정엽 순천향대 교수는 ‘RIP Flash(뒤에서 설명)’ 프로젝트를 통해 발행한 글 ‘플래시 게임의 플랫폼적 특이성’을 통해 “엄밀한 의미의 ‘인디 씬(indie scene)’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모여 자신의 창작 솜씨와 아이디어를 뽐내는 초기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의 성립은 플래시를 통해서 가능해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RIP Flash 프로젝트를 기획·총괄한 박이선 게임 연구자는 당시 플래시를 통해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던 ‘플래셔(플래시 사용자)’들을 실제로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한 인터뷰이는 “대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플래시 제작) 의뢰를 받았는데, 책을 사서 이틀을 공부해서 만들었다. 그만큼 쉬운데도 잘 돌아간다”고 플래시의 장점에 대해 언급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플래셔는 “한 때 잘 벌 때는 플래셔로 1년에 억대 연봉을 받았고, 사업을 하는데 직원을 12명을 쓰기도 했다”며 플래시 제작 산업 부흥기를 회고했습니다.


플래시를 추도하는 ‘장례식’도 마련됐습니다. 원래 RIP Flash 운영 측은 검정 옷을 맞춰 입고 추도사를 공유하고 지방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계획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으로 인해 비대면 행사를 준비 중입니다. 오는 31일에는 ‘게임의 역사와 플래시’라는 주제로 플래시가 국내외에 끼친 영향을 짚어보는 토크 행사가, 다음 달 12일에는 ‘기억, 기록, 그리고 플래시’ 라는 주제로 플래시의 기억과 아카이브에 대한 토크가 이어집니다.

플래시는 사라지더라도 플래시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영원할 겁니다. 잠시 RIP Flash에 들러 플래시 게임이 ‘그때 그 시절’ 당신에게 준 것에 대해 추억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물론, ‘조의’를 표하는 것도 괜찮고 말입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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