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방역은 백신이었다
과거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간 감염병들도 결국 백신 앞에선 무릎을 꿇었다. 면역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리뷰 이뮤놀로지’는 지난 22일(현지 시각) 영국에서 벌어진 여러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백신이 강력한 무기였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냈다. 세균 감염에 의한 급성 호흡기 질환인 디프테리아를 비롯해 소아마비, 홍역, B형 인플루엔자 등이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 영국에서 거의 박멸됐다. 영국 정부는 화이자 백신 사용을 긴급 승인해 지난 9일 첫 접종을 실시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다음 주 중 긴급 사용 승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코로나 위기도 백신으로 극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네이처 리뷰 이뮤놀로지’가 22일(현지 시각) 낸 보고서는 백신이 온갖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확산세를 꺾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저자인 앤드루 J 폴러드 옥스퍼드대 교수는 세계적으로 많은 목숨을 앗아간 디프테리아·소아마비·홍역·수막염균 등이 백신 도입으로 영국 내 환자를 획기적으로 줄인 사례를 공개했다.
세균 감염에 의한 급성 호흡기 질환인 디프테리아의 경우, 영국에서 1940년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연간 5만건 넘던 감염 건수가 백신 접종 이후 급감하며 1950년 이후엔 거의 박멸됐다. 최근까지 발생 건수가 두 자릿수를 넘지 않고 있다. 1940~1950년대 연간 발생 건수가 최대 7000건에 육박했던 소아마비도 1956년 백신 접종이 도입된 뒤 5년도 안 돼 연간 건수가 1000건 밑으로 떨어진 뒤 1962년 이후 영국에서 거의 퇴치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예방접종이 매년 200만~300만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1990년 세계적으로 출생아 1000명당 93명이던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이 2018년 39명으로 떨어진 것도 백신의 기여가 크다는 게 WHO 분석이다.
폴러드 교수는 “인구 중 충분한 숫자가 백신을 맞게 되면 맞은 사람뿐 아니라 맞지 않은 사람도 간접적으로 보호를 받게 돼 예상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고 했다. 질병별로 차이가 있지만, 소아마비⋅디프테리아 등의 경우 인구의 86% 이하가 백신을 맞으면 집단면역이 생겨 전파가 느려지거나 중단된다고 설명했다. 24일 미국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코로나 백신을 인구의 70~90% 정도가 맞으면 집단면역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폴러드 교수는 “접종 후 1~2일 안에 발생하는 주사 부위 통증, 발적 및 부기, 발열, 불쾌감 및 두통 등은 백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이라며 “과거 데이터를 봤을 때 백신은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안전한 개입”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은 지난 9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가 만든 코로나 백신을 접종한 국가다. 코로나 사망자가 급증하자 영국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화이자 백신 사용을 승인해 국민 접종에 들어간 것이다. 과거 숱한 감염병을 겪으며, 결국은 백신이 감염병을 격퇴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이 같은 결정을 이끌어냈다. 폴러드 교수는 “코로나 무증상 감염과 경미한 감염까지 예방 가능한 백신은 지역 사회 전파를 줄이고 잠재적으로 집단면역을 확립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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