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윤석열 손 들어줬지만.."재판부 성향 문건 매우 부적절"
"징계 절차에 하자..본안 승소 가능성도"
24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을 정지한 법원 결정의 요지는 징계 사유에 다툼이 있고 징계 절차에 하자도 발생했으므로 윤 총장의 승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본안소송 판결 전까지는 효력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윤 총장 쪽은 검찰총장의 중립성·독립성을, 법무부 쪽은 검찰에 대한 대통령의 민주적 통제를 주장하며 격론을 벌였지만, 재판부는 징계의 절차와 사유 및 집행정지 요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 근거해 집행정지 필요성을 인정했다.
법원이 공개한 24쪽 분량의 결정문을 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홍순욱)는 윤 총장의 남은 임기 등을 고려할 때 “집행정지 사건이지만 본안소송에서의 승소 가능성에 대한 판단도 일부 필요했다”고 밝히며 징계 혐의에 대한 실체 판단도 집행정지 결정에 반영했다.
■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 악용 위험 있어 매우 부적절…다시 작성돼선 안돼”
재판부는 우선 윤 총장이 작성을 지시한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은 “판사의 주요 판결과 세평 등을 문건화하는 것은 이것이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부적절하고 차후 이와 같은 종류의 문건이 작성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무부 주장대로 해당 문건이 재판부 공격용으로 쓰인 것인지, 반복적으로 보고가 됐던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선 증명이 부족해 (문건을 작성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재판부 자료 취합과 작성·배포 과정을 추가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채널에이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 방해는 징계 사유로 타당하지만, 수사 방해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지난 4월 한동수 감찰부장의 감찰을 윤 총장이 중단시킨 것은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 사건 감찰 착수는 대검 감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대검 감찰위원회 운영규정 등을 들며 “윤 총장이 한동훈에 대한 신속한 감찰 및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감찰 중단을 지시한 것인지는 본안재판에서 충분한 심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봤다. 또 채널에이 수사지휘권을 대검 부장회의에 위임했다가 이 사건을 전문수사자문단에 회부한 행위는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범위로 보인다”며 전문수사자문단 회부 요건이 충족됐는지 본안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난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의 정치 참여 여부에 대한 답변은 문제가 없다고 봤다. ‘정치를 할 거냐’는 질문에 “소임을 다 마치고 나면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은 퇴임하고 나서 좀 천천히 한번 생각해 보겠다”라고 답하고 ‘그 봉사의 방법에는 정치도 들어가냐’는 거듭된 질문에 “그것은 지금 말씀드리기가 어렵다”는 답이었다. 법무부 징계위원회는 이런 발언이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케 한다”고 결론 내렸지만, 재판부는 이를 “징계위의 추측에 불과해 비위 사실을 인정하는 근거로 적절치 않다”고 했다. ‘퇴임 뒤 봉사’ 발언도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한 봉사’는 정치를 통한 봉사, 국민들을 위한 무료변호, 다른 공직 수행을 통한 봉사, 일반 자원봉사 등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그 발언의 진위는 퇴임 후 행보에 따라 밝혀질 것이어서, 이 발언을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윤 총장의 발언을 놓고 정치권과 언론은 그가 정치 참여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고 그뒤 대선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법원은 이를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 “징계위원 기피신청 의결 때 정족수 부족“ 절차적 하자 인정
재판부는 윤 총장 쪽이 징계 과정에서 꾸준히 주장한 절차의 위법성 부분에서는 징계위원 기피 의결정족수 문제만 ‘무효’로 판단했다. 검사징계법상 징계위원 기피 결정을 위한 의결은 전체 징계위원(7명) 중 과반수(4명)가 있어야 가능한데, 징계위원 3명이 기피신청을 기각한 것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않아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본 것이다. 당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는 정한중 한국외국어대 교수, 안진 전남대 교수, 이용구 법무부 차관,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5명이 참석했는데 윤 총장 쪽이 공통 사유로 낸 이 차관과 심 국장, 정 교수와 이 차관 기피신청 때는 이들이 빠지고 3명이 의결했다. 그 뒤 심 국장이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을 전달받고 채널에이 수사지휘를 일임받은 부장회의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회피하면서, 윤 총장 쪽이 낸 각 위원들에 대한 개별 기피신청 때도 3명의 위원이 돌아가며 의결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윤 총장 쪽의 기피신청 대부분이 적법하지 않게 기각됐다는 판단이어서 향후 본안소송에서도 법무부 쪽에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추미애 장관을 대신한 징계위원장 직무대리로 정한중 교수를 위촉한 것이나 징계를 회피했던 심 국장의 기피신청 의결에 참여한 건 절차상 위법이 아니라고 봤다.
■ “총장 2개월 부재, 검찰 전체 손해 아니야”…법무부 “국정 혼란“ 주장도 인정 안해
재판부는 이런 판단을 종합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그에 따른 긴급한 필요성을 공공복리에 견줘 최종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윤 총장이 2개월간 총장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손해를 입고, 임기제인 총장의 법적 지위와 임기 등을 고려해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봤다. 더불어 본안 청구에서의 승소 가능성 정도도 고려해 집행정지의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검찰의 독립성·중립성 훼손이 ‘회복하기 힘든 손해’라는 윤 총장 쪽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대한 법무부의 보복, 여권 인사들의 월성 원전 사건을 저지하려는 등의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주장에 재판부는 “소명하기 부족하고 소명할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윤 총장의 2개월 부재가 중요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검사들의 수사 의지를 꺾어 검찰 조직과 사회 전체가 손해를 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총장 직무를 대행하는 대검 차장검사나 일선 검사들이 총장이 아닌 국민의 편에서 직무를 수행할 것을 신뢰한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이번 징계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행정부 일원인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의 행사로, 집행정지신청이 인용되면 행정부의 불안정성, 국론의 분열 등 공공복리를 침해한다”는 법무부 쪽 주장도 “그 주장만으로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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