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용 특혜 논란, 정치권에서만 시끄러운 이유

노형석 2020. 12.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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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과 스밈]
미술판 "누구나 신청하는 지원금
그거 받았다고 욕먹는 게 놀라워"
"예술가, 지원금 받아 연명하는 약자"
정치권의 왜곡된 인식 바꿀 기회로
17~23일 서울시 중구 회현동 금산갤러리에서 진행된 문준용 작가의 개인전 현장. ‘증강 그림자’라는 특유의 기술적 개념으로 창작한 그림자놀이 체험 설치작품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인 미디어아트 작가 문준용씨가 지난 17~23일 개인전을 열자 “코로나 피해 예술인 지원금을 수령해 전시를 차렸다”는 보수 언론의 보도와 야권의 비난이 쏟아졌다. 대통령 아들이 염치없이 영세 예술인의 지원금 수령 기회를 빼앗았다며 ‘도둑놈’이란 극언까지 나왔다. 특권을 이용해 가난한 예술가의 몫을 차지했다는 프레임이다. 그렇다면, 기회를 잃은 작가들이 우글거리는 미술판 분위기는 과연 어떨까.

“작품 제작비 일부를 지원한다는 공고가 나왔어요. 작가라면 누구나 신청하려는 게 당연하죠. 대통령 자식은 안 된다는 자격 기준은 어디에도 없던데. 욕을 먹는 게 놀라워요.”

미술판은 잠잠(?)했다. 전화, 에스엔에스, 전시장에서 만난 기획자·작가들은 한결같이 “논란이 되는 게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말부터 꺼냈다.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고 알 생각도 없으면서 정치권에서 과도하게 비판만 한다는 얘기다.

북촌 화랑가에서 만난 작가 ㅇ씨는 “잘사는 집안이나 유력 공직자 집안 출신 작가들이 꼬박꼬박 신청서 내고 지원금 타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창작지원금은 지금 정치인들이 말하는 ‘생계자금·생활보호기금’이 아니다.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돈이고, 그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존재감을 표현하고 사회와 공유한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은 공공기관이나 기금의 지원금은 작품과 기획이 뛰어나면 누구나 받아갈 수 있는 돈으로 여긴다. 부모가 누구이고, 재산이 얼마인지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제약 조건을 지원 자격에 규정한다면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하는 역차별이 된다. 작가를 위한 복지 제도는 미흡하긴 하지만 수년 전부터 ‘예술인 생계지원금’이라는 이름 등으로 따로 마련돼 있다.

문씨는 미술계에서 나름대로 인정받아온 작가다.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신작 ‘증강 그림자’(Augmented Shadow)는 증강현실 기술을 상상력으로 변주한 특유의 개념이다. 지난 10월 파라다이스재단의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인 아트랩에서도 이런 콘셉트 아래 관객이 전등을 들고 가옥 내부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숨어 있는 사람의 표정과 움직임을 마주하는 ‘그림자놀이’ 작품을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증강 그림자는 문 작가가 2011년 미국 파슨스스쿨 졸업 작품전에서 처음 공개했던 개념으로, 10년 가까이 기술적으로 연구하면서 더욱 확장한 공간과 스토리텔링으로 발전시키는 중이다. 졸업 작품은 그해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의 뉴미디어 기획전 ‘토크 투 미’에 출품작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번 지원금 논란은 예술지원 제도에 대한 정치권과 일반인의 오해와 인식의 골을 분명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야권의 프레임은 “예술가는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약자에 불과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김창겸 한국미디어아트협회장은 “예술가의 창작기금에 ‘지원’이란 이름을 붙였기에 마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불우이웃 같은 존재라는 왜곡된 인식이 생겨났고, 이런 선입견을 깔고 야권이 문씨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예술인을 수혜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을 바꿀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작가들의 의견과 일맥상통한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뉴미디어 작업은 현대미술에서 여전히 변방의 영역이다. 장비 대여, 스태프 동원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판매로는 거의 막혀 있다. 지원금 신청·수령은 필수고, 지원액도 제작비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동료 작가들의 전언이다. 문제가 된 서울문화재단 지원금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금 제도는 ‘이(e)나라도움’이라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집행 내역을 일일이 조회할 수 있다. 총액 중 인건비는 20% 미만이다. 지원금 신청에서 탈락한 작가들의 반발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런 현장 상황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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