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식당가

2020. 12. 23. 22: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요즘 식당동네 리포트를 좀 해보련다.

원래 식당과 유흥업소가 몰린 동네는 '지라시'가 많이 돌게 마련이다.

강제무급휴직은 위법이라지만, 지금 이 동네에 나가 보시라.

식당 사장들이 요즘 제일 많이 받는 전화는 이런 내용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폐업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 뉴스1

요즘 식당동네 리포트를 좀 해보련다. 한마디로 세기말 같다. 손님 수보다 직원이 더 많다. 점심은 그래도 손님 수가 더 많다. 원래 점심은 이윤이 박해서 1.5회전이나 2회전을 돌려야 겨우 조금 남긴다. 그걸 전제로 6,000원, 7,000원 밥값이 유지되는 거다. 그런데 절반도 채우기 힘들다. 재택근무가 확산된 시내 중심가 가게들 피해가 더 크다. 근처에 주거지역이 없으니 배달도 포장도 없다. 점심에도 가게가 텅 빈다. 저녁? 당연히 전기료도 못 번다. 휑한 골목 사이로 오토바이들이 질주한다. 어디선가 음식을 받아서 가는 배달원들이다. 배달 오토바이 드나드는 가게가 부러워보긴 처음이라고, 한 가게 주인이 말한다. 그는 배달이 안 되는 삼겹살구이집을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지만 그들에게 닥친 이 상황은 현실이다. 바닥 자영업자들, 일용할 백반과 삼겹살과 국수와 커피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 그들과 협력해서 먹고사는 공급상들, 주변의 모든 사람들. 원래 식당과 유흥업소가 몰린 동네는 ‘지라시’가 많이 돌게 마련이다. 사채 쓰라는 광고쪽지다. 요새 이게 쑥 들어갔다. 돈 필요한 사람은 더 많아졌을 텐데, 사채꾼은 숨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허, 참 모르시네. 요새 일수 내줬다가 채무자가 사라져서 얼마나 애를 먹는데. 딸라 이자를 준대도 돈을 못 빌려요.”

지역 사정에 밝은 복덕방 사장님의 설명이다. 혀를 쯧쯧 찬다.

사장들 얼굴이 어두우니, 직원들도 울상이다. 강제무급휴직은 위법이라지만, 지금 이 동네에 나가 보시라. 법 지키며 하는 사람들 있는지. 빤한 임금이 뭉텅 줄어드는데도 그들로선 또 말하기 어렵다. 사장이 엎어질 판이니까. 가게가 망하는 것보다는 순환 무급휴직이라도 받아들이고 있는 판국이다. 그나마 휴직이라도 하는 집은 버티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다. 앞이 캄캄해서 아예 계산이 안 되는 가게도 많다. 지금 내놓으면 권리금 한 푼 못 건진다. 중고 장비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산처럼 쌓여 있었다. 경기가 좋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내놔봐야 안 팔린다. 이 판국에 누가 창업하겠는가. 보증금에서 월세를 까는(실은, 월세 연체이고 법적으로 강제 퇴거가 가능하다) 가게가 태반이다. 그럼 건물주는 가만있는가. 상황이 나쁘니 마구 쪼아대기는 어려워도 월세 연체는 못 참겠다고 나선다. 명도 소송 내는 건물주도 많다.

놀라운 건, 이 상황에 가게 수집하려고 목돈 준비해놓은 꾼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목 괜찮은 곳에 가게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저렴한 권리금에 얼른 낚아채려는 사냥꾼들이다. 이곳 생태계가 그렇다. IMF, 미국발 금융위기 때 한번씩 겪은 경험이 준 본능적 감각이다. 그때도 가게가 무권리로 대량 쏟아졌고, 경기는 금세 회복됐다. 잡아둔 가게들이 큰돈이 되었다.

친한 후배(물론 그는 주방장 겸 사장이다)에게서 밤늦게 전화가 왔다. 대뜸 운다. 아하. "형, 전 이제 희망이 없어요. 가게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빚으로 시작해서 가게를 일궜다. 솜씨가 좋았다. 유명해지고, 장사도 잘됐다. 직원들에게도 잘했다. 보너스도 주고, 유급 연수도 마련해줬다. 본인은 월세 살면서도, 벌면 가게와 직원에게 투자했다. 네 몫도 챙겨가며 하라고 하면 그는 그냥 웃었다. 지금 그에게, 우리에게 닥친 이 비극은 너무 작위적인 것처럼 보여서 현실감이 없다. 식당 사장들이 요즘 제일 많이 받는 전화는 이런 내용이다. 재료상이다.

“재료비가 두 달치 밀렸네요. 결제 안되면 이제 물건 끊어야 합니다. 저희도 죽을 맛입니다.”

박찬일 요리사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