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한예종을 고양시로! / 이권우

한겨레 2020. 12. 2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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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일이다.

고양시에서 좀 외진 곳에 자리 잡은 한 도서관에서, 그것도 일요일에 글쓰기 연속강좌를 기획했다며 연락해왔다.

어느 날 에스엔에스(SNS)를 보다 '한예종 고양시 유치를 위한 범시민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제는 한예종 구성원의 의지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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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ㅣ도서평론가

몇년 전 일이다. 고양시에서 좀 외진 곳에 자리 잡은 한 도서관에서, 그것도 일요일에 글쓰기 연속강좌를 기획했다며 연락해왔다. 처음에는 잘될까 싶었다. 그래도 금세 마음을 고쳐먹고 함께하겠다고 대답한 데는 까닭이 있다. 그날 연락받은 도서관에 동네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 강의한 적이 있다. 열정 넘치는 사서가 도서관 팀장으로 갔는데, 여러모로 상황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아무 조건 없이 의기투합했다. 결과는,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그러고 나서 그 도서관이 무엇을 기획하든 다 잘되었다고 한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으니, 일요일 아침부터 강당은 시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에 ‘물들다’가 있다. 가끔 ‘물, 들다’라고 써보기도 한다. ‘들다’는 스미거나 옮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삼투압 현상이 벌어지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 굳이 말을 만들자면, 이 물은 마중물일 터다. 바짝 마른 펌프물을 퍼 올리려면 한 바가지 물이 필요하다. 누군가 먼저 나서는, 마중물이 있어야 스며드는 일이 일어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문화의식으로 충만한 사람이 시민과 함께하면 그 정신은 자연스럽게 공동체에 스며든다. 나는 친구들하고 내가 사는 동네를 교양과 지식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어느 날 에스엔에스(SNS)를 보다 ‘한예종 고양시 유치를 위한 범시민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살펴보니 한예종은 캠퍼스가 세 군데로 흩어져 있는데다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된 의릉 때문에 석관동 캠퍼스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 새로운 터에 통합 캠퍼스를 세우려 한단다. 그래서 고양시가 나선 것이었다.

고양시가 내세우는 조건은 상당히 좋았다. 킨텍스 인근의 행복주택 부지를 후보지로 정했는데, 별도의 조성비도 들지 않고 기숙사 문제가 해결되는 장점이 있었다. 이 부지 주변으로 2024년을 전후로 씨제이(CJ) 라이브시티, 방송영상밸리, 일산테크노밸리가 들어서는지라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예술과 산학협력에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교통편도 괜찮다. 3호선에다 경의선이 있고 수도권광역급행 철도(GTX)가 공사 중이고, 일산-소사선은 내년에 개통할 예정이다. 광화문, 홍대, 강남 쪽으로 가는 버스 노선도 많다. 후보지 옆으로는 제2자유로가 나 있다.

문제는 한예종 구성원의 의지일 터다. 유치 경쟁에 나선 지자체를 보니, 단연 송파구가 눈에 띄었다. 굳이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서울을 벗어나고 싶지는 않으리라 짐작한다. 그런데 송파구의 부지는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어 실제 통합 캠퍼스를 조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울을 벗어나면 그동안 한예종이 쌓아온 위상이 흔들릴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명성 있던 몇 예술대학이 경기 남부로 이전한 다음 성장세가 꺾였다는 우려도 있었다. 과연 그럴까?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한예종이 서울을 벗어난다고 그 영향력이 줄어들 리 만무하다.

고양시는 이미 인구 100만명을 넘어선 대도시다. 위성도시로 출발했지만, 이제 자립도시로 탈바꿈하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의 수장이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려고 분주한 게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대학을 모셔오려고 애쓰는 게 자랑스럽다. 한예종 구성원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들어와, 이 도시를 물들여달라고. 정치도 경제도 아닌, 문화와 예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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