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떠나겠다는 미황사 금강 스님, 주민들은 왜 붙잡나?

박경우 2020. 12. 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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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떠나야지 했던 게, 벌써 20년이나 흘렀네요."

주민 등으로 구성된 '미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금강 스님이 없는 미황사를 상상하기 어렵다"면서 "달마산에 미황사가 있어 산이 아름답듯이 미황사는 금강 스님이 있어야 아름다운 절"이라며 연장 근무를 요청했다.

마을주민 박임순(51)씨는 "미황사는 종교적인 사찰의 의미 이상의 가치가 있는 해남의 문화유산"이라며 "숱한 명사들이 찾고 기거할 수 있도록 금강 스님이 계속 절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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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이 23일 전남 해남 미황사에서 "오래전에 떠나야 했는데 하는 일들이 마무리 못해 연장한 것이 벌써 20년나 흘렀다"고 소회를 밝혔다. 미황사 제공

"항상 떠나야지 했던 게, 벌써 20년이나 흘렀네요."

국내 최남단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 위치한 천년고찰 미황사. 거의 폐허 위기에서 다시 예전처럼 번듯한 사찰로 탈바꿈시킨 금강 주지 스님이 내년 2월에 절을 떠날 예정이다. 스님이 절을 떠난다는 소식에 마을 주민들이 너도나도 만류하고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주민 등으로 구성된 '미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금강 스님이 없는 미황사를 상상하기 어렵다"면서 "달마산에 미황사가 있어 산이 아름답듯이 미황사는 금강 스님이 있어야 아름다운 절"이라며 연장 근무를 요청했다. 이들이 작성한 호소문에는 주민과 불자·탐방객 등 6,000여명이 참여했고, 다음달 초 1차 서명부를 교구 본사인 대흥사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들은 20여년 전 흉물로 전락한 미황사를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변모시킨 것은 현공 스님에 이어 금강 스님이 그동안 주지를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주민들의 이같은 바람에도 불구하고 금강 스님은 23일 "30년 간 중창불사의 소임을 다했으니,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떠나야 한다"면서 "오래전에 떠나야 했는데 하는 일들이 마무리 못해 연장한 것이 벌써 20년이 됐다"고 속마음을 꺼내 보였다. 스님은 이어 "어제 했던 일들은 다 잊고 오늘만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본분"이라며 "마을 주민들과 얘기도 마쳤고, 앞으로 스님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선 지난 8일 문화재청 주관의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 포상 대상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은 금강 스님은 해남 주민들과의 인연이 남달랐다.

한반도 최남쪽 땅끝, 지금의 미황사는 금강 스님의 지게에서부터 시작됐다. 스님 등에 짊어진 지게의 짐이 더해질수록 절을 찾은 사람들의 발길도 늘어났다.

스님은 청소년들이 단청문양을 그리고 한문 주련(기둥에 붙이는 세로글씨)을 익히는 한문학당을 설립해 올해로 26회를 맞았고 1,600여명이 수료했다. 2002년에 시작해 매년 내국인 4,000여명, 외국인 500여명이 참여한 템플스테이는 국내 대표 체험장으로 성장했고 산사음악회는 외부에 미황사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해남군 미황사에서 해마다 10월 열리는 괘불제 행사. 해남군 제공

특히 그는 조선시대 대형 불화로 보물 1,342호인 '미황사 괘불탱'을 복원·모사해 2000년부터 매년 10월이면 높이 12m 괘불을 대웅보전 앞마당에 걸고 괘불제를 갖고 있다. 또 중장비를 쓰지 않고 몇년간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낸 달마고도는 2017년 개통했으며,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명품길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지역분교가 폐교 위기를 맞자 음악회를 열어 통학버스를 마련해 이제는 60명이나 다니는 학교가 됐다. 이외에도 대웅보전 천불벽화·웅진당 나한벽화 복원, 자하루미술관 건립, 문양탁본 전시 등은 금강 스님이 미황사에 뿌리고 키운 불교문화의 씨앗이 됐다.

마을주민 박임순(51)씨는 "미황사는 종교적인 사찰의 의미 이상의 가치가 있는 해남의 문화유산"이라며 "숱한 명사들이 찾고 기거할 수 있도록 금강 스님이 계속 절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 했고, 원없이 살았으며 이제야 자유를 찾은것 아니겠냐"면서 "후임 스님이 더 완성된 미황사를 위해 주민과 함께 할 것"이라고 자신의 뜻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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