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쓴 해피엔딩..김도훈의 아름다운 이별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2020. 12. 2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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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울산 현대 김도훈 감독이 19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주니오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카타르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헹가래를 타고 높이 비행했다가 내려온 감독이 흔히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울산 현대 김도훈 감독(50)은 우승 소감을 전하기에 앞서 불과 한 달 전 상황을 떠올리며 탄식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었다. 지난 3년간 정상 문턱에서 넘어진 것만 네 차례. 만년 ‘2인자’라는 지긋지긋한 꼬리표를 떼지 못했던 김 감독은 아시아 정상에 오른 뒤에야 조금은 편안히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이 이끄는 울산은 지난 1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0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서 주니오의 멀티골에 힘입어 이란의 페르세폴리스를 2-1로 눌렀다. 울산이 아시아 챔피언으로 발돋움한 것은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다. 김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팬들에게 미안하다. 이번 우승이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우승컵을 차지하고도 팬들을 향한 미안함을 먼저 토로한 것은 그 순간 지난 울산의 발자취가 너무도 선명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울산은 2019년 내내 K리그1 선두를 달리다가 최종전 패배로 라이벌 전북 현대에 우승컵을 내준 아픔이 있다. 올해는 설욕을 다짐했지만 K리그1과 FA컵 앞에서 또 거짓말처럼 전북에 밀려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2018년 FA컵도 준우승으로 마무리한 것을 감안하면 준우승 4차례 경험했다. 김 감독이 “축구가 즐거워야 하는데 (올해만) 준우승만 하다보니 사실 즐겁지 않았다”면서 “사실 카타르에 오지 않으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울산의 한 관계자는 “올해 계약이 만료되는 감독님은 사실 대회 전부터 재계약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 “마지막까지 선수들 그리고 팬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ACL에 참가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울산 선수들이 지난 1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유종의 미를 꿈꾸던 김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완벽한 해피엔딩을 이끌어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ACL이 중단되기 전 조별리그 첫 경기는 비겨놓은 상황이었지만 지난달 카타르 도하에 입성해 나머지 5경기를 모두 승리해 16강에 오르더니 결승까지 매 경기 2골 이상을 터뜨리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특히 페르세폴리스와의 결승전에선 선제골을 먼저 내줬으나 전반 종료 직전과 후반 초반 상대 실수로 얻어낸 두 차례 페널티킥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울산 선수들이 지난 1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0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김도훈 감독(위)을 헹가래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ACL 역사에서 무패 우승은 울산만의 기록으로도 남았다. 2012년 대회에서도 우승하기까지 10승2무를 기록한 울산은 이번 대회 9승1무를 달렸다. 울산에 남은 유일한 2012년 우승 멤버인 이근호는 “2012년과 2020년 모두 울산은 강팀”이라면서 “감독님이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 선수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해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거꾸로 “경기를 뛴 선수들과 뒤에서 희생한 선수들 그리고 부상으로 돌아가거나 한국에 남았던 선수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김 감독은 ACL 우승에도 불구하고 4년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부임 첫해인 2017년 FA컵 우승 그리고 2020년 ACL 우승까지 처음과 끝이 아름다웠다. 김 감독은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면서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더 발전하길 기대하면서 응원하겠다. 난 이제 집에 가서 와인을 한 잔 하며 쉬고 싶다”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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