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피로 물든 30년 우정..한집에 모인 세 남녀의 비극

김종서 기자 2020. 12.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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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소개해준 술자리가 화근..성폭행 재판 앞둔 친구 살해
"숨지기 전 신체 훼손" 엽기 범행..징역 25년 불복해 상고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30년 지기 친구 B씨를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A씨(36)는 원심보다 가형된 징역 25년의 중형을 선고한 항소심에 불복해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주장했던 살인의 참작 동기와 우발성이 인정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행동이 남겨진 여자친구의 행복을 위함이었다는 엇나간 마음을 참작해주길 바라기 때문일까.

숨진 B씨도, A씨와 그 여자친구의 삶도 모두 망가뜨린 비극은 지난해 9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 시작됐다.

2019년 9월 22일. A씨는 둘도 없는 친구 B씨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해주고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A씨와 B씨는 5살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동고동락한 각별한 사이였다.

여자친구의 집에 모인 이들은 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시다 잠들었고, 잠에서 깬 A씨는 "B가 나를 성폭행했다"는 여자친구의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다.

분노한 A씨는 곧바로 B씨를 추궁했고, 눈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B씨를 경찰에 넘겼다. 이 때만해도 A씨는 B씨가 절차대로 죗값을 치르길 바랐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B씨의 모습이 A씨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B씨가 불구속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도 A씨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차례 구속을 탄원했고, 엄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게시했지만 여자친구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기만 했다.

분노는 점차 커졌고, B씨가 준강간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소식에 A씨는 결국 B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A씨의 계획은 단순했고, 범행은 순조로웠다. 지난 3월 2일 오후 5시께 연락을 피해왔던 B씨를 한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불러낸 A씨는 그곳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잘못을 인정하는지 묻는 등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인근 모텔로 자리를 옮겼다.

B씨와 만나기 전부터 A씨는 평소 차에 갖고 다니던 흉기를 품고 있었다. 다음날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다시 준강간 사건이 입에 오른 그때, A씨는 비로소 품고 있던 흉기를 꺼내들어 B씨를 마구 찔러 살해했다.

A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엽기 행각을 벌이기도 했는데, 숨진 B씨의 신체 일부를 훼손해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B씨의 친구에게 보냈고, 비닐봉지에 담아 여자친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화풀이를 감당하지 못해 이별을 요구했던 여자친구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A씨는 이 같은 행동에 "B의 죽음으로 여자친구가 안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담담히 털어놔 주위를 놀라게 했다. 부검 의견과 달리 B씨가 아직 숨을 거두기 전 신체를 훼손했다는 사실도 A씨가 스스로 진술했다.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A씨는 흉기를 소지하긴 했지만 B씨를 살해할 계획은 없었고, B씨가 오히려 여자친구를 모욕하는 말을 하자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참작 동기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제11형사부는 B씨가 A씨를 만나기 전 사과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고, 불리한 진술을 전혀 하지 않다가 태도를 바꿀 사정이 없다는 점에서 우발적 살인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참작 동기는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고, 1심과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검찰 역시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고, 항소심에서도 원심과 같은 징역 28년을 구형했다.

항소심을 심리한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원심과 달리 참작 동기를 인정하지 않았고, 형량을 더 높여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A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수차례 폭행 등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B씨는 준강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A씨는 사법체계를 정면으로 부정했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처벌하고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할 기회를 짓밟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행 방법이 매우 잔혹하고 엽기적"이라며 "B씨로 인해 분노했다는 이유로 귀중한 생명을 무참히 도륙한 A씨의 책임을 감경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A씨는 항소심 결과에도 불복해 상고했고, 대법원 심리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guse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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