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3D프린터로 찍어낸 가짜알로 바다거북 알 밀렵꾼 잡는다
3D 프린팅 + GPS│가짜 바다거북 알로 불법 거래 추적한다
중앙아메리카의 국가 코스타리카에서는 바다거북이 해안가에 산란한 알이 음식 재료로 거래된다. 바다거북은 대부분 멸종위기종으로, 알을 채취해 유통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정력에 좋다는 속설 때문에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바다거북의 알을 훔치는 범죄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범죄자들은 훔친 알을 교묘하게 밀거래 한다.
환경단체 파소 파시피코와 영국 켄트대 공동연구팀은 이런 불법 거래를 단속하고 알 채취를 근절하기 위해 밀거래를 추적하는 가짜 알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3D 프린터에 신축성 있는 폴리우레탄 소재를 넣어 바다거북 알과 똑같이 생긴 가짜 알을 찍어내고, 이 가짜 알 내부에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GPS-GSM 송신기를 탑재했다. GPS-GSM 송신기는 실외와 실내 모두에서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진짜 알과 무게를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가짜 알 내부의 빈 공간은 실리콘 고무로 채웠다. 연구팀은 가짜 알이 진짜 알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doi: 10.1016/j.cub.2020.08.065
연구팀은 GPS-GSM 송신기를 넣은 가짜 알을 코스타리카 해변 4곳, 총 101개의 바다거북 둥지에 배치하고 위치를 추적했다. 그 결과 25%가 불법 거래자들의 손을 통해 이동했다. 일부는 인근 주택가나 해변에서 2km 떨어진 술집으로 이동했고, 가장 멀리는 137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 알은 이틀 동안 이동해 슈퍼마켓 하역장에 옮겨진 뒤 주거지역에 도착했다. 판매상들이 바다거북 알을 직접 방문 판매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슈퍼마켓 하역장은 알을 훔친 사람과 판매하는 사람이 만나는 인계점일 가능성이 높다.
연구팀은 제보도 받았다. 해변에서 43km 떨어진 곳에서 마지막 신호를 보낸 가짜 알의 사진이 도착했는데, 제보자는 거래 장소, 거래량에 관한 정보를 함께 보냈다.
이번 가짜 알 프로젝트를 진행한 파소 파시피코의 보존과학 책임자 킴 윌리엄스-귈런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미국 범죄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와 ‘더 와이어’에서 테니스 공 등에 기기를 심어 마약상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가짜 알로 만든 추적 시스템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걸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의미를 밝혔다.
현재 그가 속한 연구팀은 프랑스령 기아나의 한 단체와 본격적으로 가짜 알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는 “남미에는 상어 지느러미를 불법적으로 채취하는 문제도 심각하다”며 “가짜 거북 알처럼 상어 지느러미의 유통 경로를 밝혀내는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진계│코끼리가 내는 지진파로 밀렵꾼을 감시한다
코끼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 상아는 역설적으로 코끼리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다. ‘하얀 금(white gold)’이라고 불리며 값비싼 공예품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밀렵꾼들은 상아를 얻기 위해 불법적으로 코끼리를 죽여왔다.
2016년 9월 발표된 ‘그레이트 엘리펀트 센서스(Great Elephant Census)’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아프리카 15개 국가에서 코끼리의 수는 30% 감소했다. 매년 8% 정도가 밀렵 때문에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레이트 엘리펀트 센서스는 국제 코끼리 보호단체 ‘국경 없는 코끼리’ 등이 주도한 역사상 가장 넓은 범위의 야생동물 개체 수 조사 프로젝트다.
이에 아프리카 국가들은 코끼리를 보존하기 위해 단속반을 만들거나 밀렵 관리 정보망을 구축하는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과학계도 이를 지원하는 연구에 나서고 있다. 한 예로 2018년 베스 모티머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부 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지진계를 이용해 위험에 처한 코끼리를 파악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doi: 10.1016/j.cub.2018.03.062
몸무게가 최대 6t(톤)인 코끼리의 이동은 지표에 미세한 진동을 만든다. ‘우르릉’이라고 표현하는 코끼리의 울음소리 역시 지진파를 만들어낸다. 1990년대 케이틀린 로드웰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는 코끼리가 이런 진동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코끼리는 발로 바닥을 굴러 수km 밖에 떨어진 동료에게도 신호를 보낸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아프리카 케냐 버팔로스프링스 국립보호지역에 지표의 진동을 기록하는 ‘지오폰(Geophone)’을 설치했다. 그리고 지진파를 기록하는 동안 코끼리의 모습을 촬영해 코끼리의 행동과 지표 진동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코끼리가 서식하는 지역의 지질 정보를 고려해 코끼리가 만들어내는 지진파를 정확하게 구별해냈다.
코끼리의 움직임으로 발생한 진동은 세기나 유형에 상관없이 1km 근방으로 전파됐다. 코끼리가 빨리 움직이면 지표에 미치는 힘이 세지며 진동은 더 멀리까지 전파됐다. 가장 멀리는 3.6km까지도 퍼졌다. 또한 달리기, 우르릉거리기, 규칙적인 걷기 등 코끼리의 행동에 따라 지진파의 패턴이 달라졌다. 이는 곧 지진파의 패턴으로 코끼리의 움직임을 추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코끼리가 달릴 때의 패턴이 갑작스럽게 감지되면, 코끼리가 위험에 처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베스 모티머 연구원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코끼리가 만든 데이터에서 의미있는 진동만을 추출해 코끼리의 행동마다 달라지는 지진파의 유의미한 차이를 알아냈다”며 “이 연구가 실제 밀렵 감시에 활용되려면 다양한 환경 조건과 장소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몸집이 큰 코끼리는 어딜가나 눈에 띄는 생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코끼리의 진동 신호를 파악해 밀렵꾼의 눈에 띄기 전에 보호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인공지능│위기 처한 코끼리의 외침을 듣다
중앙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코끼리의 멸종 위기를 막기 위해 ‘코끼리 듣기 프로젝트(Elephant Listening Project)’가 진행 중이다. 미국 코넬대 조류학연구소가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콩고민주공화국 북부에 위치한 누아바레-은도키 국립공원과 인근 숲에 50개의 음향 센서를 설치하고 24시간 내내 숲에서 나는 소리를 기록하고 있다.
센서에는 침팬지, 고릴라, 버팔로, 앵무 등 다양한 동물의 소리가 기록된다. 이뿐만 아니라 과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 오가는 인간의 목소리, 비가 오는 소리 등 국립공원 내의 모든 소리가 담긴다.
이 중 연구팀이 관심 있는 데이터는 코끼리가 내는 소리다. 코끼리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10Hz 내외의 초저주파로도 의사소통을 한다. 이 소리를 통해 코끼리의 수를 추정할 수 있고, 코끼리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녹음된 소리에서 코끼리의 위협 신호를 구분해내면 밀렵꾼들이 출몰하는 시기와 지역을 유추할 수도 있다.
관건은 방대한 데이터 처리 기술이었다. 누아바레-은도키 국립공원에서 3개월 동안 수집한 데이터양은 7TB(테라바이트·1TB는 1024GB)로, 노래 200만 곡에 해당하는 양이다. 기존 알고리즘으로는 원하는 코끼리의 음향만 분류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미국 스타트업 ‘컨저베이션 매트릭스(Conservation Metrics)’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기계학습의 한 종류인 딥러닝을 이용해 3개월이 걸렸던 분류 작업을 22일로 단축했으며,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버인 ‘애저(Azure)’를 이용해 하루 만에 해냈다. 컨저베이션 매트릭스 연구팀은 인공지능으로 대략 1만 5000건의 코끼리 대화를 분석해냈다. 이 과정에서 코끼리가 저주파 소리를 내며 모이고, 길게 우는 소리로 인사한다는 행동학적인 특징도 발견했다.
현재 분류된 정보는 아프리카 보호구역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인 ‘DAS(Domain Awareness System)’에 업로드 돼 있다. DAS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이 개발한 시스템이다. 여기에는 동물에 부착한 추적기, 폐쇄회로(CC)TV, 현장 보고서, 드론이 촬영한 사진 등 불법 밀렵꾼으로부터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자료가 통합돼 있다.
코끼리 듣기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피터 웨지는 영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음향 정보는 (즉각적으로) 밀렵을 멈추게 할 순 없지만, 이 정보는 우리가 코끼리에 관해 정기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DNA│반박불가 코뿔소 밀렵 증거 수집하다
지속적인 단속에도 야생동물 밀렵이 근절되지 않는 배경에는 약한 처벌 관행도 있었다. 실제로 과거 밀렵꾼들은 1000달러(약 112만 원) 정도의 벌금형이나 1~2주 정도의 가벼운 형량을 받아왔다.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DNA라는 강력한 증거가 등장하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살해된 야생동물의 DNA로 범죄자를 추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디 하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대 수의학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남아프리카에서 살해된 코뿔소 3968마리의 DNA를 ‘RhODIS(Rhinoceros DNA Index System)’에 업로드하고, 수사 기관과 공조해 범인을 추적했다. 그 결과 120건이 넘는 사건의 범죄자들을 검거했다. 그중 2012년 남아프리카 크루거국립공원에서 코뿔소 두 마리를 죽이고, 뿔 3개를 앗아간 밀렵꾼은 29년 3개월 형을 받았다. doi: 10.1016/j.cub.2017.11.005
남아프리카에는 코뿔소 뿔의 가루가 암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속설이 퍼져 있다. 금이나 다이아몬드, 마약인 코카인보다 비싸게 팔려나가는 곳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2007년 13건에 불과하던 코뿔소 밀렵이, 2014년 1215건까지 증가했다.
이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한 보츠나와, 짐바브웨, 케냐 등 아프리카 남쪽에 위치한 국가들은 DNA 기술을 이용해 본격적인 밀렵꾼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코뿔소 사체 발견 시 DNA 샘플 채취를 의무화하고, 살아 있는 코뿔소의 DNA도 채취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스티븐 오브라이언 러시아 세인트피터스버그대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밀렵꾼을 검거하면 그들은 항상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변명을 한다”며 “채취 시 전혀 관련 없는 DNA가 섞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DNA는 밀렵꾼들이 부인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 토막상식
밀렵 탓에 상아 없는 코끼리 늘었다
1977년부터 1992년까지 아프리카 남부 국가 모잠비크의 내전이 지속되는 동안, 고롱고사 국립공원에 거주하던 코끼리의 90%가 목숨을 잃었다. 상아가 무기 구입의 자금원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후 놀랍게도 고랑고사 국립공원에는 상아 없이 태어나는 암컷 코끼리가 급증했다. 영국 켄트대 연구팀에 따르면 1992년 이후 태어난 암컷 코끼리 중 3분의 1이 상아 없이 태어났다. 암컷 코끼리가 상아 없이 태어날 확률은 본래 4%에 불과하다.
연구를 이끈 도미니크 곤칼브스 켄트대 연구원은 “내전 당시 상아가 없는 코끼리들만 살아남았고 새끼들이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상아 형성과 관련된 유전자가 코끼리 개체군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끼리 얼마나 줄었나
2016년 9월 발표된 ‘그레이트 엘리펀트 센서스(Great Elephant Census)’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아프리카 15개 국가에서 코끼리 수가 30% 감소했으며, 이는 약 14만 4000마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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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경 기자 longfestiv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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