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행위가 쌓여 거대해지는 '악' [책과 삶]

선명수 기자 2020. 12. 1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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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나는 고백한다 1·2·3
자우메 카브레 지음·권가람 옮김
1권 448쪽, 2권 388쪽, 3권 424쪽
각 1만4000원

“어젯밤 발카르카의 비에 젖은 거리를 걸으며 비로소 나는 내 가족 중 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실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설은 비 내리는 거리를 걷는 노년의 주인공 아드리아 아르데볼의 독백으로 문을 연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그는 기억을 모두 상실하기 전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고백하기 시작한다. 그 모든 여정엔 골동품상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가 금고에 보관해온 오래된 바이올린, ‘비알’이 함께한다. 아버지는 비알의 내력에 대해 함구했지만, 아드리아는 바이올린의 숨겨진 비밀을 파고들며 아버지의 수집욕이 과거의 끔찍한 사건과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된다.

‘카탈루냐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작가 자우메 카브레의 소설이 국내 첫 번역 출간됐다. 2011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 <나는 고백한다>는 오래된 바이올린에 얽힌 ‘악의 연대기’를 추적한 작품이다. 소설은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 홀로코스트,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등 축적된 악의 역사와 가족의 개인사를 넘나들며 ‘악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악은 결코 거대한 사건으로만 명명될 수 없으며 개인의 행위가 조금씩 축적돼 자라나고 대물림된다는 것을 아드리아의 개인사를 통해 추적해 나간다. 최초의 모래알갱이는 눈을 간지럽힐 뿐이지만, 그것이 가시가 되고 불덩이로 변한다는 것.

작가는 한 문장이나 문단 안에서 여러 시공간과 인물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서술 기법을 선보인다.

카탈루냐어로 쓴 이 소설은 출간 이후 31개 언어로 번역되며 ‘카탈루냐 문학’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평을 받았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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