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 4] 소수자의 임신중지 접근을 더 제한하다니요

한겨레 2020. 12. 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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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목소리, 들]18살 때의 임신중지, 이중·삼중 어려움 있어
청소년 상담 의무 조항은 없애야 해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바로가기 : 낙태죄 폐지 특별페이지 http://www.hani.co.kr/arti/delete

지난 10월15일 한국여성민우회는 ‘낙태죄 전면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열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하다고 결정했는데도,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이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시민들이 모여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날 6시간15분의 이어 말하기에는 6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직접 나서 또는 영상으로 또는 편지로 임신중지와 그 권리를 말했습니다. <한겨레>는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 건강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낙태죄 폐지’ 페이지에 이어 싣습니다.

자료 제공 : 한국여성민우회

■목소리 4: 라일락

저는 라일락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임신중절을 경험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만들고 있어요. 저는 청소년일 때 원하지 않는 임신을 경험한 적이 있고 그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으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당시에 18살이었고 집을 나온 상황이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고 당시 만나던 두 살 많은 애인과의 관계에서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되었고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 사이에서 굉장히 고민을 했는데요, 낳아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자라면서 제가 받았던 성교육이 여학생들만 음악실에 모아두고 폭력적이고 잔인한 낙태 영상을 보여준다든지 길거리에 종교인들이 태아는 생명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낙태는 죄이고 생명을 죽이는 거라고 알고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를 낳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내 상황을 생각해보면 모아둔 돈도 없고 애인과 길게 만난 사이가 아니라 아이를 안정적으로 양육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어요. 그래서 차츰 임신을 중단해야겠다는 쪽으로 기울었어요. 병원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제가 청소년이기 때문에 임신중단 수술을 하려면 부모님을 데려오라는 게 너무 당연하게 따라오더라고요. 다른 지역을 가서라도 병원을 찾았는데 저는 결국 임신중단할 병원을 찾을 수 없었어요. 정말 절망적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에도 안 좋고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낙태는 죄라고 생각을 해서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어요.

저보다 두 살 많은 여성인 친구에게 겨우 털어놓게 되어서 그 친구의 신분증으로 겨우 수술을 받게 됐는데 그 병원에서도 파트너의 동의를 요구했고, 저는 다행히 같이 가서 괜찮았지만 다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아찔했어요.

수술비가 5~6년 전 80만원이라는 비용, 제 한 달 아르바이트비였는데 그 비용도 혼자 다 감당했어야 했어요. 낙태가 불법이고, 파트너의 동의나 부모님의 동의를 요구하는 이중삼중의 덫 때문에 더 막막했던 것 같아요.

낙태죄 폐지 이슈에서 청소년, 장애인처럼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더 세심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특히 이번 입법예고안에서 14주라는 제안도 화가났지만 가장 화가 난 것은 만16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임신중단에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고, 동의를 못 받으면 스스로 학대 정황을 입증해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학대받았다는 신고는 현실에서 정말 어려운 거고,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몸에 대한 결정인데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하나의 덫이 더 생기는 거거든요. 그들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그런 제한과 조치들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세 이상의 청소년들에게도 상담을 반드시 받도록 하게 되었는데, 임신중절에 대해서 접근이 용이해야하는 게 사회적 소수자들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가지 제한을 더 둔 것이 너무 문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입법예고안을 만든 정부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5~6년 전 당시에 수많은 병원을 헤매야 했던 청소년인 나도 사람이고 우리는 그렇게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우리도 사람이라고 똑바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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