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300만원 임대료 따박따박.."착한 임대인은 없었다" 자영업자들의 울분

전광준 2020. 12. 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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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코로나 1년간 적자 1억 넘는데.."
1·2·3차 유행마다 매출 곤두박질
"방역 동참, 우리만 희생 강요당해"
서울 용산구의 한 식당이 저녁 식사 시간임에도 가게 불이 꺼진 채 ‘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POS)만 켜져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억1600만원’ 서울의 한 복합쇼핑몰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을 하는 ㄱ(59)씨의 현재(1~11월) ‘성적표’다. 월 임대료·관리비(1300만원)와 인건비·재료비(2200만원)는 그대로인데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매출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매달 1천만원 가까운 빚을 ‘카드깡’으로 돌려막는다. 생활비는 아내의 카드론에 기댄다. 등록금 부담에 아들을 최근 군에 보냈다. 4년 전 퇴직금(고등학교 교사)으로 식당을 차릴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지난해까지는 크진 않아도 수익이 났다. “앞이 깜깜해요. 우리 가족 미래가 안 보여요. (임대료 내는) 매달 말일은 속이 새까맣게 타요.”

지난 1년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우리 사회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늘 자영업자가 먼저 멈춰야 했다. 14~16일 <한겨레>가 만난 자영업자들은 방역을 위해 멈춰야 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왜 다른 것들은 멈추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방역 기준에 따라 영업 방식을 바꾸고, 매달 임대료를 마련하느라 안간힘을 써왔지만 12월 코로나 3차 유행에 이제 더 버티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 대출 상환이 시작되는 많은 사장님들이 봄을 두려워하고 있을 거예요.”(카페 운영자 ㄴ(41)씨)

<한겨레>가 만난 자영업자들의 1년 매출을 살펴보면 이들이 코로나 1차 유행(3월)에서 타격을 받은 뒤 2차 유행(8월)부터 기초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3차 유행(12월)에서 벼랑 끝에 몰렸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ㄱ씨의 경우 지난 8월 2600만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코로나 2차 유행을 겪은 뒤 9월 매출이 600만원 줄었다. 회복하나 싶었지만 12월에 다시 추락 중이다. 지난해 12월 3600만원의 매출을 올린 ㄱ씨는 이달은 매출이 1천만원에 그칠 거라고 예상한다. 경기도 고양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조아무개(42)씨는 “3월 매출이 떨어졌지만 올해 7월까지만 해도 버틸 만했다”고 말했다. 올해 1500만~1900만원을 유지하던 매출은 8월(1200만원)을 시작으로 하락세다. “12월 들어 가게에 한 팀도 안 오는 날이 많아요. 연말모임 안 하니까 손님이 없어요.” 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ㄴ씨도 “여름휴가 때 해외여행을 못 가니까 가게로 손님이 몰릴까 기대했는데 8월 매출이 반토막 난 뒤 회복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ㄴ씨 카페는 9월부터 계속 적자다.

정부의 1·2차 재난지원금은 이들에게 숨통을 틔우긴 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효과는 그때뿐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마저도 대형마트에 입점해 대기업으로 분류된 30대 ㄷ씨(경기도 한 대형마트 안경점 운영)는 “재난지원금 사용이 안 된다는 말에 손님들이 떠나 오히려 매출이 떨어졌다”며 고개를 떨궜다.

“우리에게 너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속으로 해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죄인처럼 벌을 받는 것 같아요.”(카페 운영자 ㄴ씨) 이들은 코로나19에 따라 자신들의 매출은 출렁이는데 임대료는 그대로인 것에 의문을 가진다. ‘착한 임대인’은 없다고 말한다. ㄴ씨는 “착한 임대인 운동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주변에 그런 임대인은 한명도 못 봤다”며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했다가 가게를 빼거나 다시 계약할 때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힘겨루기에서 밀리는 느낌이다”라고 토로했다. ‘착한 임대인’을 만나 올해 임대료 500만원을 감면받은 조씨 역시 “저는 분양 상가라 상가마다 주인이 달라 혜택을 받았다. 임대료 인하로 건물 가치 하락을 걱정하는 건물주는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절대 착한 임대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가 지난 9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차임증감청구권’(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경제사정 변동을 이유로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감염병도 사유로 추가했지만 자영업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실제 임대료를 깎으려면 소송을 거쳐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은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상향을 검토 중”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코로나19의 굴레에서 당분간 벗어날 수 없다면 이제는 더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씨는 “영업시간을 제한할 때는 임대료도 인하할 수 있게 정책이 도입되면 좋겠다. 왜 임대료만 멈추지 않는 거냐”고 말했다.

16일 소상공인 단체들은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비 침체로 인한 매출 감소에 영업도 물리적으로 제한된 와중에 임대료는 꼬박꼬박 내야 하니 부담이 크다”며 “(최근 국회에 발의된) 임대료 멈춤법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하기를 기원한다. 감염병 방역 보상범위에 집합 제한·금지 조처에 따른 소상공인, 중소기업 사업주, 근로자의 경제적 손실을 포함하는 입법이 이뤄져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정부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광준 이주빈 기자 light@hani.co.kr

자영업자 대책, 해외는 어땠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의 임대료 부담 완화 정책을 펴는 국외 사례는 많다. 국회도서관의 최신외국입법정보 141호(코로나 대유행과 상가임대차 보호에 관한 미국, 캐나다, 호주 입법례)를 보면, 미국은 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 지원·구제 및 경제적 보장법’(CARES법)을 제정해 주택과 상가에서 임대료 연체를 이유로 강제퇴거 절차를 개시할 수 없도록 못박았다. 이 조처는 당초 120일간만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올해 말까지 기간이 연장됐다. 영국도 임차인이 임대료를 밀렸을 때 임대인이 계약종료를 미리 통보해야 하는 기간을 연장했고, 독일은 주택과 상가 임차인이 코로나19로 인해 임대료를 체납한 경우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가 지난 4월 제정한 ‘소매 및 기타 상업용 임대 규정(코로나19) 2020’도 눈여겨볼 만하다. 규정을 보면 임대인은 영업중단 등 코로나19 관련 법률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본 임차인에 대해 임대차계약 해지, 퇴거, 건물 압류, 보증금 차감, 손해배상 청구 등의 임대차계약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또 코로나 사태로 임대인이 토지세, 공과금, 보험료 등을 감면받았다면 임차인의 임대료도 동일하게 감액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가 임대료를 직접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캐나다 정부 누리집을 보면, 캐나다 정부는 ‘긴급임대료 보조금’(CERS)을 통해 수입이 줄어든 소상공인에게 임대료의 65%까지, 봉쇄 조처 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경우엔 25%를 추가해 최대 90%까지 지원한다. 캐나다 정부는 앞서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캐나다 긴급 상업용 임대 지원 정책’(CERCA)을 통해 임대인이 매월 소상공인 임차인의 임대료를 최소 75% 감면해주게 하고, 그 임대료의 50%는 정부가 부담했다.

일본 정부도 코로나19 영향으로 매출이 급감한 소상공인 등에게 임대료를 지원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누리집을 보면, 지난 5월부터 이달까지 한달 매출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50% 이상 감소했거나 3달 연속으로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감소했을 경우가 대상이다. 법인은 최대 600만엔(약 6340만원), 개인사업자는 최대 300만엔(약 3170만원) 안에서 신청 직전 여섯달치까지 임대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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