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만델라 정신

김기동 2020. 12. 16.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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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권위주의'가 민주주의 위협
의회 경시 풍조·정치분열 조장
여당 오만이 이성적 사고 흐려
포용·화합 없는 통치는 실패할 것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지난 5일은 그가 떠난 지 7주기 되는 날이었다.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은 만델라를 ‘타타 마디바(Tata Madiba)’로 기억한다. ‘존경하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왜일까. 10%의 백인이 90%의 유색인종을 가혹하게 억압했던 백인통치 시절. 그는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차별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27년간 감옥 독방에 갇혀 지냈다. 보통 사람이라면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와신상담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겠지만, 그는 달랐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1992년 5월 포트하레 대학에서 “민주주의가 없으면 평화도 있을 수 없다”는 명연설을 했다. 훗날 ‘만델라 정신’의 토대가 됐다. 민주주의를 통해 평화를 가져오고, 그 평화를 토대로 용서와 화합, 자유도 쟁취할 수 있다는 게 키워드다. 1994년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의 일성도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Forgive without forgetting)’이다. 보복·숙청이라는 과거보다는 ‘포용’이라는 미래를 선택했다.

2020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권위주의’ 광풍이 휩쓸고 있다.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 수를 앞세워 공수처법, 국정원법, 부동산법 등 닥치는 대로 의사봉을 두드린다.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해 놓고도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성’을 외친다. 혹 대통령을 풍자한 대자보를 붙였다간 득달같이 잡혀간다. 북한인권 개선의 순기능과 표현의 자유는 망각한 채 대북전단이라도 뿌리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자기들과 다른 생각이라도 가지면 ‘이지메(집단따돌림)’에 시달린다.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절차와 법은 깡그리 무시하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검찰총장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행정권력에 의존한 의회민주주의 경시 풍조나 정치적 분열 조장 등 신권위주의 징후와 딱 들어맞는다.
김기동 논설위원
집권세력은 ‘다수결 원칙에 따른 정당한 민주적 절차’라고 강변하지만 지나친 아집이다. 선거제도에 따라 의석 176석을 가져갔을 뿐, 그들을 지지한 국민은 과반에 못 미치는 49.9%에 불과하다. 총선 승리로 인한 여당의 오만함이 이성을 가린 탓이다. 집권세력이 이토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 문재인정부는 이런 비전으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임기 후반으로 향해가는 지금 눈을 씻고 봐도 ‘성과’가 마땅치 않다. 굴욕적이란 비난을 무릅쓴 대북정책은 비핵화는커녕 독설과 남북교류 단절로 돌아왔다. ‘소득주도성장’이란 단어는 사라졌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파탄과 최악의 청년취업난은 고착화됐다. 미친 집값과 ‘윤석열 죽이기’는 콘트리트 같던 대통령 지지율을 2주 연속 30%대로 끌어내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만, 정부의 조급증이 자칫 신권위주의를 더욱 부추길까 걱정이다. 맹자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 중 으뜸은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건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후안무치한 정치에 국민들이 오히려 낯 뜨거울 정도다.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협치·대화란 단어는 자취를 감췄다. 장관들의 존재감은 사라진 지 오래고, 모든 권력의 청와대 쏠림 현상은 심화됐다. 여당은 코로나19 확산과 집값 폭등, 민생경제 파탄 등 모든 잘못을 야당의 발목잡기 탓으로 돌린 채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군인이 아닌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공동체의 적(敵)은 민주주의 규범을 훼손하는 이들이다. 대통령의 철학과 정치를 ‘통치권’으로 포장한다고 추악함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오만한 권력은 무너지고, 관용과 화합을 모르는 통치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만델라는 “최선의 무기는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새삼 오만·불통으로 얼룩진 작금의 ‘삼류 정치’에 던지는 울림이 묵직하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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