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란, 이런 나라..눈이 내리고 사막 사파리와 숲 소풍을 가는

김종목 기자 입력 2020. 12. 16. 20:40 수정 2020. 12. 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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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편견을 넘어 '찐 이란'을 보세요..이란인 마에데 인터뷰

[경향신문]

제재, 갈등 같은 말과 오해·편견 너머엔 그저 ‘이란’이 있을 뿐이다. 사진은 밀라드 타워에서 바라본 테헤란 북부. 위키미디어 커먼스
전쟁·핵·경제 제재만 떠오르는 나라? 여성들이 공부도 일도 운전도 못하는 나라? 그런 나라 아니에요

이란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경제 제재나 미국·이란 갈등, 이란·이라크 전쟁, 테러, 핵 같은 말들이다. 외신을 보면, 이 나라는 위험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거기 가도 되겠어?” “전쟁이 나지 않을까” “그런 위험한 곳에는 왜 가나”. 유달승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가 이란 알라메 타바타바이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연구년을 보내러 갈 때 이런 말을 들었다. 2019년 일이다. 그는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서문에 이 일화를 적었다.

1990년대 시네필들은 이란인 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 같은 영화를 떠올릴 듯하다. 이 두 영화는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1990년 6월21일 이란 북서부 대지진이 배경이다. 재난의 이미지가 이란에 더해졌다.

온라인에서 만난 한국인들로부터
국적 때문에 ‘친구 차단’ 당해 충격
부정적인 국가 이미지 바꾸기 위해
큰 책임감 가지고 SNS 활동 중

어둡고 부정적인 국가 이미지는 종종 개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이어진다. 이란인 마에데는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에서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제 국적을 발견하자마자 저를 차단해버린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첨엔 저도 모르게 ‘내가 못생겨서 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제 국적 때문이었어요.”

네이버에서 이란 관련 뉴스를 확인할 때마다, 그 기사 댓글들을 볼 때마다 속상했다고 한다. “한국분들의 댓글이나 글을 보면서 운 적도 많다”고 했다. “많은 분이 ‘이란 여성들이 공부도 일도 운전도 못하고, 다들 온몸을 가리면서 모르는 남자랑 말을 하지도 못한다. 다들 강제결혼을 하면서 아주 불쌍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네이버 댓글들을 보면 미국 덕(경제 제재 등)에 이란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져서 다행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거든요.” 이런 말도 했다. “(이란에 대한) 그 많은 미움이 어디서 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란과 이라크를 구별 못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가 트위터(@Iran_maee)를 시작한 계기가 여기 있다. 이란의 ‘좋은 모습’ ‘진짜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지 열심히 생각했다. 그는 “내 나라가 보수적이고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트위터에) 왔다”고 말했다.

마에데는 트위터에 이란 여행지 이미지를 주로 올린다. 사계의 모습, 숲과 사막의 풍경, 페르시아 유적·유물을 담았다. 왼쪽부터 길란의 루드칸성·마술레·필반드 마을, 이란 국립보석박물관, 시라즈 마할루 핑크호수, 하메단 아바스 아마드 계곡의 빙벽 등반.
이란엔 서울로·서울공원도 있고
드라마 ‘대장금’ 시청률이 90%
한국 예능 프로 보며 한국어 공부
코로나 이후 여행을 하게 된다면
덜 알려진 곳 중 호르무즈섬 추천

마에데의 뜻은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다. 고정관념과 편견에 갇혀 있다가 그의 트윗을 보면서 이란을 다시 들여다봤다. 마에데는 지난 11월28일 첫눈이 내린 테헤란 풍경을 트위터에 올리며 이렇게 적었다. “이란에도 눈이 옵니다.” 이란엔 사계절이, 강과 바다, 숲과 사막이 있다. 한국(10만210㎢)보다 16배(164만8000㎢) 넓으니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지정학 틀로만 인식하면서 여행의 지리를 깨닫지 못했다. 이란의 옛 국명이 페르시아란 점을 떠올리면 이 나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은 조금 더 넓어진다. 그는 “다양한 기후, 민족, 언어, 종교 등을 이란에서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 사막 사파리도, 숲 소풍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이란에 가긴 힘들다. 마에데는 코로나19 이후 이란을 온다면 유명 여행지 중에선 이스파한을, 덜 알려진 곳 중엔 호르무즈섬을 추천한다.

마에데는 영화 <아르고>도, <300>도 아닌 세상에 사람들이 산다는 걸 알린다. 여성 닌자 ‘쿠노이치’를 수련하는 이란 여성 등 이란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대장금>과 <동이> 이란어 더빙판도 올렸다. <대장금>은 전국 최고 86%, 테헤란에선 9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국에선 테헤란로 이름을 두고 논란이지만, 이란은 서울로에 이어 서울공원도 조성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천국의 열매나 신의 과일로 여긴,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었다는 석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기원전 5세기 다리우스 대제 때 지은 슈슈타르 관개 시설, 이란 가정집마다 소장한 페르시아 서정 시인 하페즈(1320~1389) 시집, 여성은 남성칸에 들어갈 수 있지만, 남성이 여성칸에 들어가면 ‘변태’ 취급받는 지하철 ‘전용칸’ 등 역사, 문화, 사회 이야기가 이어진다.

케심섬의 스타 밸리(위 사진)와 기원전 5세기 건설한 슈슈타르 관개 시설.

마에데는 사명감을 가지고 SNS 활동을 한다. 그가 올린 트윗엔 이런 내용이 있다. “누군가에게 유일하게 아는 이란인이 돼버린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인지 아세요? 내 한마디가 내 나라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이…. 특히 이란 같은 나라에 대한 의식이 장난 아니게 나쁘니까…. ‘님’이 이란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고 온 세상이 바뀌지 않지만 그 작은 변화가 제 세상을 바꿔요!”

그는 애국자 같다. “(캅카스 지역의) 조지아 대학에서 유학 중(영어언어학)이다. 한국에서 조지아 여행이 유행하는 것을 들었다. 이란보다 조지아에 대한 질문이나 관심이 생길까봐 지금까지 조지아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마에데는 드라마와 K팝으로 한국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는 5년쯤 되었다. 영어 자막이 달린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한국 연예인들이 쓴 SNS 글을 읽었다. 온라인에서 한국인들과 사귀며 실력을 높였다.

한국어 구사 능력 때문에 “이란 사람 맞냐”는 의심을 종종 받는다. 세종학당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석한 영상을 올렸다. 지난 3월 MBN <생생정보마당>에 나와 이란 현지 코로나19 상황을 전했다. 그는 “한국어 자체가 너무 좋아서 계속 배우고 있다”고 했다. ‘헐’이나 ‘아이고’ 같은 표현에서 한국어의 묘미를 발견한다.

대중문화와 언어에 대한 관심은 시사와 역사로 이어졌다. 미군 기지촌 영상을 보다 제주 4·3사건을 알게 됐다. 생일은 5월18일이다. “제 생일을 기억하는 분에게 여쭤봤더니 그분이 한국인이라면 기억할 수밖에 없다며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알려줬거든요. 대한민국의 현재가 그분들(항쟁에 나선 광주 시민)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에데는 “5·18민주화운동 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서 이란 1979혁명을 떠올렸다”고도 했다. 솔레이마니와 이맘 하메네이를 존경한다고 했다. 민주주의나 정세, 인물 문제를 두고 생각이 다른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의 트윗은 열려 있다. 한국의 좋은 점만 부각하는 여느 외국인 유튜버와 달리 한국인과의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이란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두고 이런 말도 적었다.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ㅋㅋㅋ.”

■고정관념 벗어나 이란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함께 펼쳐보자

유달승 한국외대 교수의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한겨레출판·2020년 7월)가 이란을 다룬 책 중 최근작이다. 유 교수는 1992년 이란 테헤란대에 유학 갈 때도 2019년 때와 같은 종류의 질문을 받았다. 유 교수는 오해와 편견이 서방 언론 때문이라고 본다. 이란은 ‘페르시아의 경찰’ ‘중동의 헌병’으로 불리며 미국의 최대 동맹국,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 중 하나였다. 1979년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하면서 동맹 관계에 균열이 갔다. 같은 해 미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외교 관계가 단절됐다. 유 교수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전쟁을 치른 베트남과도 관계 정상화를 하면서 국지전조차 없었던 이란과는 왜 화해하지 못하는가. 코카콜라와 펩시가 음료시장을 장악한 곳에 말이다.

유 교수는 1979년 이슬람혁명을 보며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대학에서 이란어를, 대학원에서 중동 정치를 공부했다. 이슬람혁명 이후 외국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란에 정통한 이 학자는 유학 시절과 교환교수 때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이란 안팎의 정세와 국제 관계, 국가 정체성과 정체(政體), 이란인의 가치관을 이야기하듯 풀어간다. 이란인은 약속 시간을 몇 시 몇 분이 아니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잡는다. 유 교수는 이란인의 특이한 시간 개념이 예측 불가능한 삶 때문에 구체적인 약속을 할 수 없는 유목 문화와 시간보다 공간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했다고 분석한다. ‘영화 <300>과 페르시아’ 같은 장도 썼다. 이란의 음식과 여행지 이야기도 곁들였다. ‘상사원도 알고 싶은 이란의 속사정’이란 부제를 붙였다.

책 표지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페르시아 시인 사디(1184~1291)의 시구를 인용했다. “인류는 한 몸/ 한 뿌리에서 나온 영혼/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지.”

이란에 관한 책은 많지 않다.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해외여행 책 중 이란 여행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근작이 2017년 나온 정영효 시인의 <때가 되면 이란>(난다), 이란어 통·번역가 유진주씨의 <이란 여행>(지식과 감성>이다. <때가 되면 이란>은 2016년 8~11월 정 시인이 테헤란에서 머물며 건져낸 사물 32개에 관한 에세이다. 모스크 문, 석류, 페르시안 카펫, 케밥 같은 익숙한 이름과 게블레, 아락, 세타르 같은 낯선 이름의 사물로 사람과 장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란 여행>도 이란어 전공자인 유씨가 테헤란 연수, 여행과 출장 등 10년에 걸친 이란 여행기와 체험담을 담았다. 여행기는 테헤란에서 북쪽 카스피안 호수, 남쪽 페르시안 걸프만까지 걸쳐 있다. 이 책 서평도 ‘이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론하며 시작한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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