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낙태죄, 보름 남았다

2020. 12. 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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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딱 보름 남았다.

사람에 대한 거다.

누구의 책임인지, 어느 쪽의 책임이 큰지 가린다는 것은 무의미해보이지만, 확실한 건 저 혼자 저절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시한이 딱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책임 있게 나서거나 발언하는 사람은 여전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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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대학생 연합 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낙태죄 완전 폐지를 주장하며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이제 딱 보름 남았다. 사람에 대한 거다. 여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에 대한 중차대한 문제다. 그건 현재일 수도, 미래일 수도 있다. 남자 입장에서는 모르는 여성이 아니다. 아내일 수도 있고 딸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여자친구,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문제는 독자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거다. 남자와 여자가 만났기에, 서로 사랑을 나누었기에(때론 사랑이 아닐 수도 있고,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생긴 문제다. 누구의 책임인지, 어느 쪽의 책임이 큰지 가린다는 것은 무의미해보이지만, 확실한 건 저 혼자 저절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남자를 꼭 ‘원인 제공자’라고 부르기는 뭐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맞다.

다시 ‘그런데’다. 법적으로 ‘임신시킨 죄’는 없다. 그러나 ‘낙태한 죄’는 있(었)다. 임신은 여자 혼자 이뤄진 게 아니지만 임신을 중절한 죄는 여자에게만 물었다. 태아가 여자의 배 속에 있기 때문일까. 낙태를 선택한 임부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으면서 범법자까지 됐다. 내가 임신시켰으니 나도 처벌하시오, 라고 법정에서 주장한 남자는 보지 못했다.

또 한 번 ‘그런데’다. 이 문제가 한 개인이나 당사자를 떠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에 있다는 거다. 한 국가와 사회의 가치관과 규범, 더 나아가면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이다. 서구의 거의 모든 나라가 이 문제로 정치·사회적 분열과 진통을 겪었다.

마지막 ‘그런데’다. 그런데 다들 너무 조용하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한다. 청와대 앞에서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외롭게 외치는 사람도 여자뿐이다. 뉴스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늘 신문에도 TV에도 ‘낙태죄’라는 단어는 한마디도 없다. 추씨와 윤씨가 우리 삶에 더 중요한 사람일까.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11일 형법상 낙태죄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개정안을 마련하라고 정해준 시한이 12월 31일이다. 1년 8개월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시한 세 달을 앞둔 10월 7일에야 임신 주수에 따라 낙태죄를 일부 유지하는 정부의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그동안 의미 있는 사회적 논의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겠다는 정치적 노력은 생략됐다. 관련 부처 공무원의 책상에서 여성의 현재와 미래의 삶이 운명지어졌다.

정부안은 11월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도 전혀 관심 없었다. 지난 국회에서 낙태죄와 관련한 의원 입법은 전무했다. 정부안이 나오자 몇몇 의원이 여성계 주장을 수용한 낙태죄 전면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 법사위원회는 시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2월 8일 첫 공청회를 열었다. 토론자는 낙태죄 유지 입장을 가진 전문가가 훨씬 더 많게 구성됐다. 여성단체들은 노심초사하며 졸속 입법을 경계한다. 시한이 딱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책임 있게 나서거나 발언하는 사람은 여전히 없다.

나는 국가가 행한 이 일련의 직무유기와 사회적 무관심에 분노한다. 자명한 사실은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거다. 정자 없이는 수태할 수 없다. 그리고 다시 자문한다. 남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온전히 남성의 것인데 여성의 몸은 왜 여성 스스로의 것이 되지 못할까, 이제는 그 질곡을 풀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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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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