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급식소 '문턱' 더 높아지고, 취약계층 '병원문' 더 좁아지고

오경민·김은성 기자 2020. 12. 15. 21: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 '공공'의 역할을 묻다

[경향신문]

“서울시, 공공급식소 권역별로 설치를” 2020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 관계자들이 1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부실한 홈리스 공공급식을 비판하며 공공급식소를 권역별로 설치해 서울시가 직접 운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방역 강화” 조식 제공 중단
“노숙인 급식을 선별하나”
‘회원증 도입’ 비판 목소리

코로나19 사태로 취약계층에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던 민간급식소가 차례로 문을 닫고, 공공급식소는 방역을 이유로 더욱 문턱을 높이고 있다.

노숙인과 저소득층에 하루 세끼 급식을 제공해오던 서울시립 따스한채움터는 지난 9월13일부터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방역관리를 강화하고자 급식시간을 조정하게 됐다”며 조식 제공을 중단했다.

2020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서울시 홈리스 부실급식 규탄 및 당사자 요구 성명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부실한 홈리스 공공급식을 규탄하고 권역별로 공공급식소를 설치해 직접 운영할 것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공동기획단은 “일명 ‘노숙인 급식 대란’의 직접적 계기는 코로나19이지만 근본적 원인은 지금까지 종교·민간단체의 자선과 시혜에 의지해 적절한 공적 급식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행정”이라며 “그럼에도 서울시는 공적 급식대책을 보완하기는커녕 공공급식을 축소하고 이용 대상을 선별하고 있다”고 했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서울 거리에 살고 있는 홈리스가 이용할 수 있는 공공급식 지원기관은 7곳에 불과하다. 여성전용 일시보호시설 1곳을 제외하면 모두 하루 한 끼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1일 3식을 제공하던 서울역 인근의 따스한채움터는 지난 9월 조식 중단과 함께 전자태그(RFID) 형식의 전자회원증을 도입하겠다고 밝혀 비판받았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복지법)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났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여전히 민간에 홈리스 급식을 맡기고 있다”며 “코로나19 유행으로 방역에 어려움이 있거나 후원금이나 봉사자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민간단체들이 급식을 중단하고 있는데 공공급식을 급하게라도 대폭 확대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줄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숙 6년째인 A씨는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급식소들이 (식사를) 주먹밥으로 바꾸거나 문을 닫았다”며 “여는 곳들조차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코로나 전담 병원 전환에
응급실마저 거절당하기도
“사회적 약자 보호 대책을”

먹을 권리뿐만 아니라 진료받을 권리도 위험에 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환자들이 병원 밖으로 쫓겨났다고 시민단체들은 문제제기하고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이날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개최된 ‘국가인권위와 정부에 코로나19로 발생하는 건강권 침해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노숙인이 이용할 수 있는 지정병원 6곳 모두가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노숙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수술 뒤 재활치료를 받다가 퇴원당해 무작정 거리로 나오거나 병상이 없거나 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응급실에 가는 것을 거절당하는 홈리스 등의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공중보건 위기상황에서 모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감염병 정책을 마련해야 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소수자·취약계층에는 보호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규진 인하대 의대 교수는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의료공백 등 공공의 역할 부재로 취약계층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해왔으나 정부는 외면해왔다”며 “정부 차원에서 취약계층을 모니터하는 전담팀을 만들고 최소한의 기본권이 박탈당하지 않게 세심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민·김은성 기자 5k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