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산행기] 구미산에서 최제우의 뜻을 새기다

장재화 경남 양산시 양주로 2020. 12. 1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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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구미산(594m) 산행은 가정 3리 용담정 입구에서 시작된다. 버스에서 내린 뒤 ‘용담정 입구’ 비석의 안내를 받아 산행을 시작한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 끝에 용담정이 있다. 용담정은 수운 최제우 선생이 동학을 일으킨 천도교의 성지다. 용담정을 먼저 둘러보고 산행을 시작해도 좋고 하산 후에 들러도 좋다.
용담정의 정문이 바라보이는 주차장 왼쪽으로 본격적인 산길이 열린다. 길은 깨끗하고 단순 분명하다. 넓은 길만 따라가면 되니까. 계곡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능선까지는 진땀을 흘려야 하는 된비알. 주차장을 출발한 지 50분 만에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 위 갈림길에서는 오른쪽 길을 따라간다. 경주의 낮은 구릉과 넓은 들. 단석산 오봉산 시룡산이 한눈에 보이는 바위전망대를 지나가면 ‘국립공원 구미산’이라고 새겨진 정상석이 등산객을 맞는다. 산행시작 1시간 45분 만이다.
풀벌레 소리에 가는 세월을 느껴
머리 위에서는 마른 잎들이 바람에 부대껴 서걱거리고 발밑에서 낙엽이 부서진다. 귀가 따갑도록 서럽게 울고 있는 풀벌레가 가는 세월을 부르고 있다. 떨어지는 한 잎의 오동잎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알았다는 옛 시인처럼, 풀벌레는 지금 붉게 타오르는 나뭇잎을 보고 자신이 생명의 끝자락에 와있음을 느껴 피가 나도록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상석 맞은편 길은 용담정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다. 직진해서 헬기장을 지난다. 헬기장을 지나 완만한 능선을 기분 좋게 걷다 보면 첫 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는 좁은 길은 인내산으로 가는 길이다. 넓고 분명한 오른쪽 길을 따라 용담정龍潭亭으로 하산한다.
인내산 갈림길에서 40여 분 내려오면 밀양박씨 묘. 여기서는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작은 저수지를 지나면 용담정 화장실. 4시간의 산행을 화장실 앞에서 끝낸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지척에 있는 용담정으로 향한다.
용담정은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동학을 연 곳이다. 정문인 포덕문을 지나면 최제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왼손에 경전을 들고 오른손을 높이 든 수운의 동상 앞에서 산객은 시간여행을 떠난다.
나뭇짐을 나르던 강화도의 산골 무지렁이 총각을 임금(철종) 자리에 앉힌 후,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던 안동 김씨 세도로 나라가 한창 어지러울 때였다. 몰락한 양반의 서출이었던 최제우는 민족의 주체성과 허물어진 도덕의식을 바로 잡는 것이 조선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으로 만세토록 변하지 않는 새로운 도를 구하려고 수도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동학이다. 최제우는 말했다.
“한울님을 잘 모신 성도들이 천상에서 극락을 누리는 지금의 선천시대先天時代가 끝나면, 인계人界에서 한울님을 모시고 지상극락을 누리는 후천시대後天時代가 도래한다. 후천시대는 국기가 바로서고 사회의 모든 불만이 제거되는가 하면 귀천이 없는 만민 평등의 이상향이다.”
최제우의 자주정신은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나라, 도덕이 살아 있는 나라, 모든 백성이 고루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신념과 통한다. 그가 꿈꾼 것은 민초들의 ‘행복’이었고 그 꿈은 ‘파랑새의 꿈’같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그의 문하에 모여들었다. 허나 최제우는 그 꿈을 이루기도 전에 혹세무민했다는 죄목으로 압송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최제우가 처형당하기 1년 전에 읊은 칠언절구七言絶句 한 부분을 들어보자.
용담의 물이 흘러 세상의 근원되고
龍潭水流四海源
구미산에 봄이 오니 온 세상에 꽃이 피네
龜岳春回一世花
용담정에서 세운 그의 뜻이 사해에 퍼지면 온 누리가 꽃밭처럼 아름다워지리라는 꿈과 포부를 선생은 그렇게 표현했나보다.
위대한 선각자들이 꾸는 꿈과 필부들이 꾸는 꿈이 같을 수는 없지만 꿈을 꾼다는 것은 아름답다. 꿈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까닭이다. 하지만 모든 꿈이 꿈꾼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바람을 만난 꿈이 피어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저버리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용담정을 떠나 가정 3리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길은 사색하며 걸어야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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