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카나리아의 경고

배연국 2020. 12. 1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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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잠수함에 토끼를 기르던 시절이 있었다.

토끼가 이상 행동을 보이면 승조원들은 재빨리 잠수함을 수면으로 올려 산소를 보충했다.

카나리아는 일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유해가스에 사람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잠수함의 토끼나 탄광의 카나리아 역할을 하는 것이 조직의 내부고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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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잠수함에 토끼를 기르던 시절이 있었다. 식용 목적은 아니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근무하는 잠수함 승조원에게 산소의 농도는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런데 잠수함이 처음 등장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산소측정기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그 대신 사용된 것이 공기에 민감한 토끼였다. 토끼는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보다 6~7시간 먼저 죽는다. 토끼가 이상 행동을 보이면 승조원들은 재빨리 잠수함을 수면으로 올려 산소를 보충했다.

19세기 유럽의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탄광 안으로 갖고 들어갔다. 그 이유는 이 작은 새가 예민한 호흡기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카나리아는 일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유해가스에 사람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광부들은 작업을 하다 새가 울지 않거나 움직임이 둔해지면 갱도 바깥으로 신속하게 대피했다. 카나리아는 탄광의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일종의 비상벨이었다.

잠수함의 토끼나 탄광의 카나리아 역할을 하는 것이 조직의 내부고발자다. 양심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로도 불린다. 조직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각종 불법과 부정부패 등을 외부로 공개해 건강한 조직으로 되살리는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에서 휘슬 블로어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이유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양심의 호루라기를 틀어막는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과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은 내부 비리를 폭로했다가 공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은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는 희대의 어록을 남기고 공직을 뛰쳐나갔고, 고기영 법무부 차관은 법치 농단에 항의해 사표를 내던졌다. 오늘 또 카나리아의 울음을 막기 위한 ‘답정 너’식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집권층이 아무리 검찰개혁으로 포장하더라도 검찰 장악의 수순이라는 내용물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경고음을 내는 새를 모조리 없애면 당장은 탄광 안이 조용해질 순 있다. 하지만 카나리아가 울음을 멈춘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남은 것은 폭발의 재앙뿐인 까닭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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