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두 시대 풍경.. 옛그림은 등불이었다

강구열 2020. 12. 14. 20: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정육의 근간 '시절인연 시절그림'
민정기 '유몽유도원' 안견 '몽유도원도'
각자 속한 시간에서 가능한 그림 그려
정선 작품은 현 시대에도 창작의 원천
박대성 '불밝힘굴'은 '낙산사' 구도 계승
임서령 '노랑 저고리' 작자 미상 '백자도'
여성을 향한 차별적 시선 극복도 담아
민정기의 ‘유몽유도원’은 조선전기의 명작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쉽게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안견이 이야기로는 전하지만 찾을 수는 없는 이상향을 묘사했다면 민정기는 삶의 공간을 함께 배치해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표시했다. 아트북스 제공
민정기의 그림 ‘유몽유도원’이 어디서 영감을 얻은지를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제목도 그렇거니와 화면을 크게 차지한 산과 복숭아밭은 조선전기의 명작 안견 작 ‘몽유도원도’를 금방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민정기는 안견을 계승하되 구태의연하지는 않았다. 화면 아랫부분을 빌라, 낡은 기와집, 도로와 차들로 채웠다. 존재하지만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유토피아 ‘도원’이 우리집 뒷산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안견과 민정기가 이상향을 소재로 그려낸 그림은 각자가 속한 시간에서 가능한 ‘시절인연’을 보여주며 동시에 그 시간이 아니고는 탄생할 수 없는 ‘시절그림’이다.
그림을 통해 동양의 정신과 사상을 소개하는 집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조정육은 근간 ‘시절인연 시절그림(사진)’에서 다양한 옛그림을 소개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옛그림에 대한 설명이 그것을 창의적으로 변형한 지금의 그림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거론하며 각각의 시절을 읽어낸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고민하면서 찾은 인생의 교훈과 가르침을 읽다 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등불 같은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향 ‘도원’은 어떻게 달라졌나

몽유도원도에 대한 작가의 설명을 좀 더 따라가보자.

안견이 표현한 도원에는 사람은커녕 개 한 마리 보이지 않고 텅 비어 있다. 자신의 꿈을 그려달라고 안견에게 부탁한 안평대군이 “날마다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고 없는지 모르겠다”고 꿈 이야기를 전한 때문이다. 안견의 그림은 형 수양대군과 권력을 다툰 안평대군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신비로운 공간을 묘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정기의 그림은 이상향을 먼 곳에서 찾지 않는다. 그림 속에 주택, 도로 등 사람이 사는 현실을 끌어들였다. 이상향은 삶의 터전 속에 존재한다.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긍정이 없으면 탄생할 수 없는 그림”이다.

정선은 후배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토대가 된 대가였다. 조선후기 실경산수의 대가인 그의 작품은 지금도 창작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박대성의 작품 ‘불밝힘굴’은 정선의 ‘낙산사’에서 구도를 배운 그림이다.

불밝힘굴은 경주의 석굴암과 불국사를 한 화면에 담고 있다. 석굴암에서 내려온 길이 계곡물처럼 흘러 불국사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론 이런 장면이 존재할 수 없다. 석굴암은 토함산의 동쪽, 불국사는 서쪽에 있어 한눈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박대성이 굳이 이런 구도를 만들어 낸 것은 석굴암, 불국사 어느 한 쪽이라도 빠지면 1000년의 정신 신라불교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실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구도를 택하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 낙산사다. 정선은 이 그림에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낙산사와 홍련암을 한 화면에 배치했다. “홍련암이 갖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한 형식이다. 전설에 따르면 홍련암은 672년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자리에 지은 절이다. ‘낙산’이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른 곳”이라는 뜻이니 홍련암이 낙산사에 가지는 의미가 크다. 조정육은 “정선은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 현장에서 느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실경을 과장, 축소, 왜곡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노랑 저고리’ VS ‘백자도’, 여성을 향한 시선의 차이

물론 과거는 계승의 대상만은 아니다. 어쩌면 극복의 대상으로서 더욱 흔히 존재할지도 모른다.

임서령의 ‘노랑 저고리’와 작자 미상의 ‘백자도’(百子圖)를 다룰 때 조정육이 보여주는 시각이 그렇다.

노랑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옷고름을 만지고 있는 여자 아이. 단정하게 빗은 머리에 엄마의 정성이 느껴진다. 환한 미소는 눈부시지만 눈물겹다. 조정육은 “(임서령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며 “우리가 저 미소를 지켜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림에는 젠더불평등이나 페미니스트의 시각이 강조되지 않았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수모를 견뎌내야 하는 여전한 현실이 떠오른다.

노랑 저고리는 다산을 기원하는 길상화(吉祥畵) 중 하나인 백자도와 대비된다. 백자도는 자식을 많이 낳길 바라는 마음을 대변하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백자도가 바라는 자식은 아들일 뿐 딸이 아니었다. 온갖 복을 누리길 기원하는 ‘곽분양행락도’나 불보살, 신선들의 모임을 묘사한 ‘요지연도’ 등에 포함된 다산의 기원에서도 딸은 없다. “가계의 계승자이자 집안의 바람막이며 사회적 활동의 대행자였던” 아들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안전장치이자 충분조건으로” 여긴 탓에 견고해진 남성 우위의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여전해 극단적인 경우 여성 혐오 범죄로 발현된다. 조정육은 “노랑 저고리는 눈물겹되 과거처럼 절망스럽지는 않다”며 “딸이라서 무조건 희생을 강요했던 시대가 아니라 그런 희생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의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