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더는 못버텨"..'영등포역 터줏대감' 맥줏집 문 닫는 날

정혜민 기자 2020. 12.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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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자리 지킨 '달봉비어'..코로나19에 결국 '폐업'
"직격탄 맞아..'9시 셧다운'에 일매출 10만원 미만"
9일을 끝으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 달봉비어가 영업을 종료했다. © 뉴스1/정혜민 기자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손님이 아무도 없네요"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맥줏집 '달봉비어'. 이날은 7년 동안 이곳을 지킨 터줏대감의 마지막 영업일이었다.

오후 7시30분, 기자가 방문한 시각에 사장인 강성원씨(33)는 혼자 집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26.4~29.7㎡(8~9평) 남짓한 가게에는 손님이 1명도 없었다. 가게에는 음악 소리만 울려퍼졌다. 마트며 식당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바로 밖 영등포역 상권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강 사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가 '직격탄'이 됐다고 말했다. 강 사장이 운영하는 달봉비어는 보통 1차가 끝나고 2차로 많이 찾는 장소다. 코로나19로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적어졌을뿐더러 오후 9시 이후로 영업을 제한하는 조치로 매장은 하루하루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달봉비어는 주로 생맥주와 간단한 안주들을 판다. 맥주 1잔에 4000~5000원대, 가장 비싼 안주가 1만원을 채 넘기지 않는다. 강 사장은 "우리 가게 떡볶이 팬인 누나들이 많은데, 다들 코로나 때문에 가게에 못 오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오후 9시에 가게가 문을 닫기까지 달봉비어에는 손님 총 3팀이 방문했다. 기자가 방문하기 전에는 2팀이 왔다 갔다고 했다. 이날 하루 총 5팀을 받은 게 전부인 셈이다. 강 사장이 얻은 이날 수익은 1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오후 8시5분쯤 30대 여성 손님이 가게 밖에서 머뭇거리더니 혼자 들어와 맥주 1잔과 나초를 시켰다. 오후 8시27분쯤 40대 커플 손님은 "30분 남았는데 괜찮냐"는 강 사장의 질문에 "그럼 맥주만 2잔 마셔도 되냐"고 묻고 들어왔다.

오후 8시32분쯤 단골인 김석환씨(가명·40)이 아내와 딸과 함께 가게에 방문했다. 김씨는 "집 근처라 일주일에 1번씩 왔는데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하니 사장님이랑 인사도 할 겸 왔다"며 "문을 닫아서 안타깝다. 이 집이 아니면 앞으로 어느 집으로 갈지 모르겠다"로 전했다.

강 사장은 김씨의 술값은 자신이 내겠다고 실랑이했다. 김씨가 만류했지만 강 사장은 고집했다. 강 사장은 전날에는 단골들을 모두 모아 대접했다고 했다.

40대 커플 손님은 "이 가게의 '마약 옥수수'를 좋아해서 맥주 한 잔 딱 가볍게 하고 싶을 때 자주 왔다"며 "안타깝고 다시 가게가 문을 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날 처음 달봉비어에 방문했다는 30대 여성 손님은 "앞으로 자주 오려고 했는데 마지막 영업일이라고 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9일을 끝으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 달봉비어가 영업을 종료했다.© 뉴스1/정혜민 기자

2014년 8월 달봉비어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점심에 열어도 손님으로 가게가 꽉 찼다고 한다. 강 사장은 "손님이 꽉 찬 거로 하루에 몇 바퀴를 돌았다"며 "대출을 받아서 가게를 열었는데 1년이 안 되어 대출을 다 갚았다"고 회상했다. 당시는 달봉비어와 같은 작은 맥줏집들이 유행이었다.

지난 7년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강 사장은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게 운영이 어려워졌는데 결정타는 코로나"라면서 "요즘은 하루 매출이 10만원도 안된다. 인건비를 제하더라도 임대료, 재료비, 공과금을 감당하려면 하루 매출이 10만원 이상은 나와야 한다"고 했다.

강 사장은 "돈도 돈이지만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은 '심적으로 미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손님이 없는데 가게에 혼자 있으면 시간도 잘 안 가고 '손님이 안 오는데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들이 들어 너무 괴롭다"고 설명했다.

강 사장은 "요즘은 진짜 단골들 때문에 문을 열었다. 무료봉사를 한 셈"이라며 주 4회 달봉비어에 온다는 '단골 형님' 이야기를 했다. 강 사장은 "내가 결혼시킨 단골도 있다"며 "젊은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가게를 접으려니 기분이 묘하다"고 전했다. 강 사장이 가게를 열었을 때는 28세였다.

좋은 손님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 사장은 "손님들한테 맞고 폭행 피해자로 경찰서에 많이 갔다. 가게 안에서 담배 피우고, 시비 걸고, 욕하는 손님들이 많았다"며 "술장사하는 분들은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인근 노숙자들의 무전취식이 잦아지자 영등포역의 '왕초'를 찾아가 담판을 짓고 일을 해결했던 경험도 있었다.

9일을 끝으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 달봉비어가 영업을 종료했다. © 뉴스1/정혜민 기자

강 사장은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임대료와 가게 운영비가 적은 축이어서 코로나19에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건물주의 배려로 계약 기간 도중에 가게를 접을 수 있었다. 강 사장은 "다른 자영업자분들이 분명히 저보다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계약 때문에 가게를 못 접는다고들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가게를 오래전에 내놨는데 보러 온다는 사람이 1명도 없었다"며 "언제 코로나가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그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바닥권리금 2000만원, 시설권리금 5000만원을 결국 포기하고 가게를 빼기로 했다.

강 사장은 정부의 방역조치가 자영업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를 들어 임대료도 건물주와 정부가 어느 정도 부담하는 게 어떨까"라고 물었다. 이어 "일반 식당은 점심에 장사가 되지만 술집은 오후 6시나 되어야 연다. 또 지금도 파티룸이나 배달 식당도 장사가 잘된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강 사장은 "지난 7년 동안 경조사를 제외하고는 하루도 쉬질 못해서 가게를 접으면 여행이나 좀 다니려고 했는데 여행을 갈 수나 있어야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당분간 집에서 혼자 TV나 볼 것 같다. 그래서 곧 친구들이랑 다른 사업을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갓 30대 중반에 들어선 강 사장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강 사장은 "가게를 접는다고 하니 엄마가 그냥 '아들 고생했다. 그동안 잘 참았다'고 하시더라"며 메마른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강 사장은 남은 재료들을 이제 다 버려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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