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5사 산재 97%가 비정규직.."위험한 작업엔 꼭 하청이더라"

박준용 2020. 12. 1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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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38)씨는 2018년 여름을 떠올리면 아직도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로부터 넉달 뒤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지면서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28일 영흥화력발전소에서 25톤 트럭 상부에서 석탄회를 싣는 작업을 하다 3.5m 아래로 추락해 숨진 심장선(51)씨도 남동발전의 재하청업체 소속 화물 노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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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내몰리는 비정규직]김용균 2주기..변한게 없는 '위험의 외주화'
홀로 낙탄제거 작업을 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고 김용균씨의 2주기 현장추모제가 김씨의 일터였던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열린 10일 낮 쓰고있던 안전모를 옆에 둔 한 참가자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태안/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ㄱ(38)씨는 2018년 여름을 떠올리면 아직도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는 인천에 있는 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다. 그는 작업장의 컨베이어벨트 밑에 있는 장치에 발을 넣어 기계를 조정하는 일을 맡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발을 넣어 기계를 움직이다가 갑자기 하반신이 말려들어갔다. 주변에 있던 비상정지 장치를 작동해 참변을 막았지만 다리에 피부이식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화상을 입어 두달간 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기계에 몸을 넣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회사는 원청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산업재해 처리에 난색을 보였다. 결국 그의 부상은 공상 처리됐다. 공상 처리는 업무 중 부상을 이유로 사업주로부터 일정한 보상금을 받고 사건을 종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발주처는 제가 다친 것도 몰랐어요. 라인이 정지됐을 때도 빨리 가동하라는 지시만 왔죠.”

그로부터 넉달 뒤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지면서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ㄱ씨는 그 이후에도 안전장치 설치 전까지 1년가량 자신을 다치게 한 장치에 발을 넣어 작업해야 했다. 그는 “최근에 와서야 2인1조 근무도 지키려는 분위기가 있다”면서도 “여전히 누군가가 위험에 계속 노출돼야 하는데, 그건 꼭 외주화돼 있다”고 했다.

10일로 김용균씨가 숨진 지 꼭 2년이 됐지만, 고씨를 비롯한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 구조 속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산다. 지난달 28일 영흥화력발전소에서 25톤 트럭 상부에서 석탄회를 싣는 작업을 하다 3.5m 아래로 추락해 숨진 심장선(51)씨도 남동발전의 재하청업체 소속 화물 노동자였다.

김용균씨가 숨진 태안화력도 안전 문제는 크게 개선된 게 없다고 한다. 태안화력의 한전산업개발에서 일하는 최아무개씨는 “김용균씨 사망 이후 현장 안전 조처가 추가됐지만, 감독당국에서 지적한 사항만 조금씩 바뀔 뿐 전반적인 개선은 더디다”며 “현장 노동자들이 ‘노면이 미끄럽다’거나 ‘작업 장소가 높다’와 같은 위험을 이야기하지만, 규정에만 맞으면 괜찮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발전소의 산재 통계도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전 공기업 5사(남동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중부발전·서부발전)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지난 8월까지 발전사 노동자 253명이 산재 피해를 입었는데, 이 가운데 비정규직은 97%(246명)나 됐다. 2018년 말 김용균씨가 숨진 뒤인 2019년과 올해 8월까지로만 한정해도, 이 시기 산재를 입은 67명 가운데 91%(61명)가 비정규직이다.

또 다른 영흥화력 하청 노동자 ㄴ(35)씨도 지난해 말 현장 순찰 작업을 하다가 미끄러운 작업 현장 탓에 발을 헛디뎌 배수로에 빠지면서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다섯달가량 입원했고, 다리에 핀을 박아 고정하는 수술까지 해야 했다. 다행히 원청인 남동발전에서 사고 이후 현장 개선에 나섰지만, 위험 현장에 대한 인식 때문에 개선에 나선 건 아니었다고 한다. “원청에선 제가 실수한 것이지 않으냐는 입장이었어요. 요청을 들어준다고 해도, 심각성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서는 것 같지는 않아요.” 김용균씨 이후 안전 설비가 증설됐지만, 그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고 말한다.

”이후에 같은 사고가 난다고 하더라도 원청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할 것 같아요. 이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이 절실합니다.” ㄴ씨의 말이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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