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석의 푸드로지>차리는 건 '빠르게', 먹는 건 '느리게'..한국인의 첫 '패스트푸드'

기자 2020. 12. 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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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밀양집 ‘돼지국밥’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추위를 녹이는 국밥

국밥, 주막·시골 장터서 출발

화폐 통용 활발해지면서 인기

대한민국 외식산업의 시발점

토렴은 국밥의 기본 조리방법

딱히 다른 반찬이 없어도 OK

배추 등으로 국끓여 밥 말면 끝

돼지국밥-부산·순대국밥-호남

전국 돌며 ‘국밥로드’ 기행 가능

국밥이 맛있는 때다. 추운 계절에 뜨끈한 국물과 푸짐한 꾸미로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데다 최근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따라 개인적으로 혼자 찾아 먹기에도 좋은 메뉴가 바로 국밥이다.

국밥은 글자 그대로 국과 밥이다. 한식의 기본인 밥, 국, 그리고 찬을 투가리(뚝배기의 방언) 하나에 다 담아 넣었다. 빨리 차릴 수 있고 먹는 이는 숟가락 하나만 들면 된다. 햄버거나 샌드위치와 같은 ‘패스트푸드’ 개념이다. 차려 내는 건 ‘패스트’지만 보통 국밥은 뜨거운 국물이라 천천히 먹게 된다. 열식(熱食)의 효과다.

국밥은 주막이나 장터에서 출발했다. 국밥집이 등장한 건 역원(驛院)이 무너진 대신 나루터나 대로에 민간 주막이 생기고, 화폐 통화가 활발해진 때, 즉 조선 후기로 넘어온 18∼19세기쯤으로 본다. 대한민국 외식산업의 출발지점이다. 이전에도 양반 많은 동리에 탕반(湯飯)이 존재했지만 보통 비싼 음식이 아니었다. 소고기와 나물, 전유어(부침개)를 넣고 끓인 탕반은 인기를 끌었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금의 다동·무교동에 있었다는 무교탕반을 비롯해 개성탕반, 진주탕반 등 이름난 탕반집이 있었다고 전한다.

탕반은 밥을 말아내니 국밥의 시원이 맞다. 최초의 탕반은 소고기국밥이었던 셈이다. ‘이팝(쌀밥)에 고깃국’이 필부의 소원이던 시기에 탕반은 폭풍적인 인기를 끌어 한양 곳곳에 탕반집이 생겨났다.

평양과 개성에는 온반(溫飯)이 그 지위를 차지했다. 밥에 고깃국물을 끼얹고 각종 고명을 올린 온반은 국밥의 일종이다. 이후 화폐 통용이 일반화되고 전국 유명 장터마다 저렴한 국밥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중 이름난 것이 경성 설렁탕과 담양 창평장 순댓국 그리고 종로통에 등장한 해장국 등이다.

처음에는 딱히 상에 앉아 밥술을 뜰 수 있는 점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터 한편에 천막을 치고 솥을 내걸었다. 화력이 하나뿐이니 밥을 미리 하고 국을 끓여 토렴했다. 토렴은 국밥의 기본 조리법이다. 뜨거운 국물로 식은 밥을 데울 수 있고 국물이 밥알에 스미니 맛도 더 좋아진다.

잡부위를 쓴 설렁탕은 양반의 권위에 맞지 않아 쉬쉬했다지만 시나브로 인기가 넘쳐나게 됐다. 1902년 창업(대한제국 한성부 등록)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老鋪)인 종로 이문설농탕은 종로 조선 건달 김두한 패거리와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등이 단골이었다고 한다. 설렁탕의 인기가 확산하면서 1930년대 경성에는 100곳이 넘는 설렁탕집이 생겨났다. 특히 나무꾼, 지게꾼과 공무원, 점포 종업원 등 일자리가 몰려 있던 종로와 청계천 주변에는 점심으로 설렁탕 한 그릇 뚝딱 하고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을 겨냥한 설렁탕집이 즐비했다.

시골 장터에도 맛있는 국밥집이 입소문을 탔다. 담양 창평장과 천안 아우내(병천)장터, 용인 백암장 순댓국이 맛좋다고 소문 나, 5일 장을 순회하던 상인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해장국을 전문으로 파는 집도 생겨났다. 1937년 종로에 청진옥이 생겼다. 새벽에 장작을 팔러 나온 나무꾼들이 선지와 내장을 넣은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허기를 채우고 한기를 달랬다. 장작불에 끓여낸 국물은 이들에게 하루 치 에너지를 줬다. 서민 메뉴 국밥으로 본격적인 외식산업이 태동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국밥이었을까. 국은 순우리말이다. 한자로는 갱(羹)이라 쓴다. 음식 이름에는 탕(湯)을 갖다 쓰기도 한다. 탕이든 국이든 모두가 좋아했다. 좀 산다는 집은 찌개와 국을 따로 상에 올렸다. 찌개가 스튜처럼 자작하다면 국은 수프처럼 묽은 편이다. 얼마 되지 않는 식재료로 가능한 한 많은 이를 먹일 수 있는 음식이 국이다. 재료에 물을 넣고 끓이면 된다. 밥을 말면 훌훌 잘 넘어가는 데다 든든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다. 그래서 국밥이 널리 퍼져갔다.

한국인은 국물을 좋아한다. 때론 국물을 먹기 위해 식재료를 고르기도 한다. 좋은 재료가 있으면 일본인은 그대로 먹고, 중국인은 튀기고, 한국인은 국을 끓인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국은 기본이다. 오죽했으면 “국물도 없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물을 넣고 끓이는 요리를 천시하는 대부분 문화권과는 식성이 다르다. 사진이나 화면에서 김을 피우는 뚝배기만 봐도 식욕이 돋아난다.

요즘 국밥에는 건더기도 넉넉하게 들어간다. 푸짐히 올린 꾸미는 국밥이 완벽한 한 끼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요소다. 있으면 더 좋겠지만 딱히 다른 반찬이 없더라도 국밥 상은 완성된다. 깍두기 정도만 내주면 다들 알아서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장사하는 입장에선 더없이 편했다. 지금 한식에서 거의 모든 식재료는 국밥이 될 수 있다. 고기나 생선, 어패류는 물론이고 배추와 시래기, 우거지, 콩나물 등 푸성귀로도 국을 끓일 수 있으며 거기에 밥만 말면 된다. 미역이나 김, 매생이 등 해조류도, 김치와 젓갈, 황태, 만두, 순대같이 한번 손이 간 식품도 국밥 재료로 변신한다.

한국인은 남녀노소 두루 국밥을 선호하지만, 지역별 생산물과 문화, 환경에 따라 전국에 각각 특색 있는 국밥이 독자적으로 생겨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다. 설렁탕은 서울, 소고기국밥은 경북, 순대국밥은 호남, 다슬기국밥은 충북, 돼지국밥은 부산 경남, 황태국밥은 강원도. 콕콕 찍어 한 바퀴 순례하면 ‘국밥로드’ 맛 기행이 가능하다.

부산에서 ‘국밥’을 말하면 당연히 돼지국밥으로 알아듣는다. 대구에선 소고기를 쓴 육개장 따로국밥이다. 따로국밥은 미리 밥을 말아내지 않고 따로 밥그릇째 내주는 것을 말한다. 전주에서 국밥을 먹으러 가자면 보통 콩나물국밥 아니면 피순대 국밥이다. 우시장이 있는 창녕과 대구 현풍에는 소구레(수구레) 국밥이 있고, 굴이 많이 나는 통영에는 굴국밥과 장어 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시락국밥이, 덕장을 보유한 대관령에는 황태국밥이 있다. 매생이 주산지인 전남 장흥에는 매생이 국밥이 맛좋다고 소문났다. 부산 기장에는 미역국밥, 제주에는 돼지고기와 모자반을 넣은 몸국이 특산 국밥으로 유명하다.

어깨가 움츠러들 정도로 쌀쌀한 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절절 끓는 국밥 한 뚝배기를 비우고 나면 거뜬히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지긋지긋한 병마의 위협 속을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의 삶의 연료로 충분해 보인다. 국밥은.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서울 순대실록, 순대 스테이크 별미

부산 밀양집, 진한 육수가 입에 ‘짝짝’

◇서울 순대실록 = 젊은층이 많이 모이는 대학로에서 따끈하고 고소한 순대국밥을 맛있게 말아내는 집으로 유명하다. 국내산 돼지 머리 고기와 직접 만드는 순대가 적절히 들어가고 사골에서 우려낸 국물이 이를 넓게 포용한다. 진하지만 의외로 깔끔한 국물에 제법 묵직한 꾸미 맛이 조화를 이룬다. 여느 집처럼 강한 맛이 아니어서 오히려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젊은 고객이 주류를 이루며 자주 찾는 재방문객이 많다. 전 세계를 다니며 순대를 깊게 연구한 육경희 대표의 철학이 뚝배기 안에 들어 있다. 달군 철판에 올려내는 순대스테이크와 볶음 등 안줏거리도 다양하다. 서울 종로구 동숭길 127. 8000원.

◇부산 신창국밥 = 부산 토성역 인근 신창국밥 본점은 이른바 북한식 돼지국밥을 내는 집이다. 국제시장에서 20년, 이곳으로 옮겨 30년 영업했다. 사골을 슬쩍 고아 국물이 뽀얗지 않고 맑다. 대신 삼겹살과 앞다릿살, 순대 등을 넣고 된장과 생강 양념을 해 갈색이 난다. 그야말로 고깃국물이다. 여기다 십수 번 토렴하며 밥알에 진한 국물이 배게 하는 수고를 들인다. 부산 서구 보수대로 53. 7500원.

◇전주 다올 = 전국 콩나물국밥의 격전지인 전주(남부시장)에서 국밥 한 가지 메뉴로 두꺼운 단골층을 유지하는 집이다. 테이블 수도 적고 자리도 외졌지만 어찌들 알고 손님이 찾아든다. 이른 아침에 문을 열고 오후에 닫는 전통적 의미의 콩나물국밥집이다. 투실한 콩나물이 속 시원한 육수에 들었다.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2길 49 남부시장. 6000원.

◇부산 밀양집 = 부평동 깡통시장에서 50년 이상 영업해온 경남 스타일 돼지국밥집이다. 하루 종일 우려낸 사골과 머리 고기 육수에 내장 등을 넣어 진한 육수가 입에 짝짝 붙는다. 밥은 미리 담아 국물에 토렴해서 낸다. 다진 양념장과 마늘을 섞고 부추 무침을 올려 먹으면 슬그머니 소주 한 잔도 생각난다. 머리 고기에서 우러난 젤라틴 성분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진하다. 미리 꺼내 살짝 건조한 살코기는 두툼하고 존득하다. 내장 국밥이나 섞어 국밥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부산 중구 중구로47번길 35. 7000원.

◇속초 문어국밥 = 딱 ‘탕국’의 느낌을 국밥으로 살렸다. 경상도와 강원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올리던 탕국 문화를 뚝배기에 담았다. 매우 특별한 국밥이다. 속초관광시장 앞 문어국밥은 한우 양지(때론 사태)와 참문어를 삶아 국밥을 차려낸다. 맛이 강하지 않고 심심하다. 시원하고 고소한 맛이 숨어 있다. 강원 고성에서 낚시로 잡은 참문어를 쓴다. 속초시 중앙로147번길 43.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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